[다산 칼럼] 기술탈취 규제, 실효성을 높이려면

입력 2017-12-25 18:22  

"중소기업 기술보호 절실한데
기술임치제 통한 보호도 한계
개발성공 시 배타적 이용 협약 맺고
제3자 이용 때 대가 협상 방안도
궁극적으론 독자 특허취득 유도해야"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공정거래위원장 >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기술탈취 문제를 들고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술탈취를 ‘무관용 원칙’으로 처리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더 올리겠다고 한다. 앞으로는 기술을 ‘유용’했다는 입증은 없더라도 ‘취득한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제3자에게 유출’만 해도 하도급법 위반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소기업 간담회에 가보면 기술탈취에 대한 하소연이 하도 많기 때문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 마주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는 개발기술의 범위 문제다. 중소기업은 자기가 기술을 다 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기업은 이 기술을 생산과정에 직접 연결·투입하는 마지막 2%의 기술이 중요한 핵심기술인데 이를 자기들이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98%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개발할 수 있는 일반기술이고 나머지 2%가 핵심기술인데 이것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98%의 기본기술이 없으면 2%의 적용기술도 쓸모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닭과 달걀 관계처럼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

둘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개발했을 때 과실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다. 통상 중소기업은 연구개발회사가 아니라 제조업체이며 대기업 개발팀에 샘플을 만들어 보내는 등 개발과정을 지원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개발기술을 이용해 일정 기간 동안 독점 납품을 기대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해 자기특허를 확보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공동개발했기 때문에 복잡해진다. 이미 기술은 대기업에 노출됐고 납품처를 결정할 권한도 대기업이 쥐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약자의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 내에서도 개발팀은 해당 중소기업에 일정 부분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매팀은 가능한 한 싸게 조달하기 위해 가급적 기술자료 공개와 납품경쟁을 선호한다.

셋째는 중소기업으로서는 거래관계 유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거래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규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기술탈취 억제는 고맙지만 규제강화 때문에 납품처를 잃을 위험이 있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제 기술탈취 고발 사례를 보더라도 거래관계가 망가져 원상 복원이 거의 불가능할 때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넷째는 기술임치제를 통한 기술보호도 한계가 있다. 기술임치제는 공인된 안전금고에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관토록 하는 제도로, 대기업의 기술자료 요구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대기업과 공동개발한 경우에는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임치를 결정할 수 없고 임치 사실이 알려지면 대기업과 거래 시 불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표준하도급 계약서에 기술임치를 의무화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기술탈취 근절만 보면 장점이 있지만 대·중소기업 간 기술개발협력을 촉진하는 제도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기술 내용에 따라 적용을 면제하거나 신축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편 개발 성공 시 기술의 배타적 이용에 관해 개발 착수단계에서부터 서로 협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현재는 기술 자료를 넘겨받은 다른 납품업체가 이 기술을 소화해서 제품화할 때까지만 개발 중소기업이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 또 표준특허에 적용되는 ‘프랜드 원칙(FRAND: 다른 기업에서 특허를 이용하려 할 때 특허권자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협의해야 한다는 원칙)’처럼 개발기술을 제3자가 이용하려면 최소한 대가 협상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하다.

또 하나는 기술개발 과정에서의 비용, 인력 투입, 샘플 등 각종 증빙자료와 주고받은 이메일 등을 잘 보관해 둬야 한다. 실제 조사를 나가면 증거자료가 없어 법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금처럼 우리의 중소기업이 하청기업으로 머무르는 한 기술탈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독일 중소기업처럼 독자 특허를 취득해 정당한 납품기업으로 우뚝 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학협력과 기술금융, 기술평가, 개발금융의 사업화 지분 참여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기술생태계를 다지는 일이 시급하다.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공정거래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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