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여파로 '경제민주화' 조항 재정립
지금까지 논란 이어져
[ 김형호 기자 ]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헌 때부터 경제를 독립된 장으로 따로 다루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의 헌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헌법의 특징이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논란이 된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 역시 경제 헌법 조항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이 같은 한국 헌법의 특수성은 제정 당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을 참조한 게 역사적 배경이다.
경제적 자유를 위한 70년의 여정
경제헌법의 70년 역사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었다. 시대에 따라 국가의 통제와 개입이 우선시된 적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자유 확대로 귀결됐다. 총 9차례의 헌법 개정 가운데 경제헌법 분야에 손을 댄 것은 1954년 2차 개헌을 시작으로 1962년(5차) 1972년(7차) 1980년(8차) 1987년(9차) 개헌 등 5회다.
제헌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규정했다. 내용에서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통제경제, 사회주의 경제 성격이 혼재돼 있다.
헌법학자인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대한민국 경제헌법사 소고’ 논문에서 “제헌헌법의 경제질서는 공산주의와 적대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계획경제 질서를 배척하면서도 자생적 자본가가 없었던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 시장경제론을 전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던 이중적 상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은 1954년 2차 개헌 때부터 시장경제를 향한 항로에 나선다. 당시 국회는 국영 공영기업만으로는 기업의 능률과 생산성 향상을 기할 수 없고 통제 경제로 인해 외자 도입이 곤란하다고 판단, 사기업의 국공유화를 금지하고 경영에 대한 통제관리를 금지했다. 대외무역도 국가통제에서 ‘육성’으로 전환했다. 경제적 평등보다 경제적 자유를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1962년 헌법은 시장경제 원칙을 확실하게 정립한 개헌으로 평가받는다. 제헌헌법 이후 지속돼 온 경제 기본원칙 조항에 일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제111조 1항에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조항을 넣어 경제적 자유를 1항으로 승격시켰다. 대신 제헌헌법에서 우선순위에 뒀던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2항으로 옮겼다. 산업국가로의 진입을 위해 시장경제 활성화에 주안점을 뒀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평가다.
1972년 7차 개헌 때는 국토개발계획 농어촌개발계획 등 일부 조항이 신설됐을 뿐 큰 틀에는 변화가 없었다. 1980년 개헌 때는 경제조항 120조 3항에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 조정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산업고도화에 따른 독과점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이를 헌법 조항에 넣은 것이다.
경제민주화 조항 등장
경제헌법은 1987년 9차 개헌 때 119조 1항과 2항으로 재정립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흐름과 궤를 달리하게 된다. 1항은 변동이 없었지만 2항에 ‘경제민주화’를 명시한 것이다. 이는 오랜 독재기간을 거쳐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이뤄진 작업으로, 시대적인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민주화는 이후 2012년 대선 때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 함께 독과점 방지 등을 통해 자유시장 경쟁 관계에서 공정한 룰을 만들어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취지였는데 최근 들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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