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헌 70년] "헌법 119조 1항보다 2항이 우선"… 시장경제 위축시키는 정치권

입력 2017-12-26 18:22   수정 2017-12-27 07:02

(1) 헌법정신 '경제적 자유' 바로 세우자

시장경제 보충원리인 2항이 경제자유 1항 압도 '본말전도'
규제개혁특별법 발의해 놓고 한 번도 심사 안한 20대 국회
여당도 야당도 '친서민' 앞세워 경쟁하듯 기업 옥죄는 입법



[ 유승호 기자 ] “(헌법이) 기업의 자유는 아주 많이 강조하고 상대적으로 책임은 강조하지 않는다.”(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독과점, 양극화·불평등의 심화, 대자본의 횡포와 경제적 약자의 희생이 경제 전반에 깔려 있다.”(김경협 민주당 의원)

지난달 30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 지 70년을 맞이하는 오늘 한국 사회가 시장경제와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경제 원리가 대기업의 독과점과 불평등을 낳고 기업은 경제적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사회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가리지 않는 규제 입법

정치권이 앞장서서 시장경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퍼뜨린다. 어느 한 정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보수우파 정당을 자임하며 현 정부를 ‘좌파 정권’이라고 공격하는 자유한국당도 ‘친서민’을 앞세워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정유섭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의원 13명은 지난 8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특별법을 발의했다. 정부가 소기업 적합 업종과 품목을 정해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고, 이를 위반한 대기업에는 영업 정지 또는 시정 명령을 내리도록 하는 내용이다. 민간 합의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권고해 업계 자율로 운용하고 있는 적합업종 제도를 법제화해 강제성을 갖도록 한 것이다.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와 달리 해당 업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특정 중소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임대료 상승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당 혁신위원회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올라 소규모 상인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막겠다며 임대료 상승률 제한을 정책 혁신 과제로 내놓았다. 임대료 규제가 전쟁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 스웨덴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벡의 경구는 잊은 지 오래다.

◆심사도 하지 않는 규제 완화 법안

기업은 그저 규제 대상으로 전락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이 27건 계류 중이다. 현행법상 정원의 3%로 돼 있는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4~5%로 높이는 내용이다. 민간 기업에까지 청년 의무고용을 강제하고, 미이행 시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법안도 제출돼 있다. 지금도 공공기관의 20~30%는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못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복합쇼핑몰, 면세점으로까지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면 기업 규제 완화 등 경제적 자유를 증진하기 위한 논의는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규제 시스템을 네거티브 규제(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로 전환하고 규제 일몰제 등을 도입하기 위한 규제개혁특별법은 지난해 5월 20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한 차례도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 야당 의원은 “규제 완화는 재벌 특혜로 낙인 찍는 분위기여서 상임위원회 논의에서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가 시장경제 원칙 압도

정치권이 반시장적 규제 입법을 추진하는 근거는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규정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119조 1항의 시장경제 원칙을 뒷받침하는 ‘보충 원리’일 뿐이라는 것이 다수 헌법학자의 의견이다.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해 시장경제를 기본 이념으로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경제민주화와 관련,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국가는 예외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이를 보충하는 정도로만 개입할 수 있다”며 “이런 원리가 국민의 경제생활 영역에도 적용됨은 물론이므로 사적 자치의 존중이 극히 존중돼야 할 대원칙임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헌법학자 출신인 정종섭 한국당 의원은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정부 개입의 근거를 너무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경제 운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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