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도시국가, 제주도 두 배 면적에 불과한 작은 나라, 낮 기온이 섭씨 50도까지 오르는 열사의 땅, 50년 전까지만 해도 대추야자와 진주조개로 연명하던 페르시아만의 어촌 마을….
두바이는 19세기까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황무지였다. 1833년 진주조개잡이 무리가 아부다비에서 옮겨와 정착했다. 1960년대 발견된 유전과 해상무역 등으로 부(富)의 토대를 쌓았지만 원유 매장량은 아부다비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GDP(국내총생산)에서 원유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3%밖에 안 된다.
이런 조건에서 두바이는 세계적인 ‘명물 왕국’으로 거듭났다. 슬로프 길이가 400m나 되는 사막 속의 스키장,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828m), 세계지도 모양의 인공섬 ‘더 월드’와 야자수 모양의 팜 아일랜드, 진주조개잡이 어선 형태의 7성급 호텔 부르즈 알아랍….
세계 최대 쇼핑몰인 두바이몰에는 1주일에 80만 명이 몰린다. 관광객들은 축구장 3개 크기에 45층 높이까지 물을 쏘아올리는 초대형 분수쇼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두바이 공항은 연간 9000만 명이 찾는 국제 허브공항이다. 세계 모든 대륙을 직항으로 연결한다.
볼품없는 사막 국가가 이렇게 성공한 배경에는 ‘두바이 주식회사 CEO(최고경영자)’로 불리는 국가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가 있다. 그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글로벌 경영 전략을 짜고 국제 자본을 유치하며 국가 자체를 ‘비즈니스 허브’로 바꿨다. 수출입관세와 개인소득세도 없앴다.
여기에 100% 외자기업 인가, 법인세 50년간 면제, 자유로운 국외 송금 허용, 국제금융센터와 금속상품센터 설립, 외국인에게 99년간 조차권 허용과 건물 층수 제한 폐지, 금융규제 철폐 등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인구 227만 명 중 외국인이 80%에 이를 만큼 국제화됐다.
무역·금융 허브를 이끈 ‘노 택스(면세)’와 물류·관광산업을 일으킨 ‘오픈 스카이(하늘 개방)’ 정책 등에 힘입어 두바이는 ‘불가능이 없는 나라’가 됐다. “최신 건축술은 여기 다 있다”는 말처럼 세계 건축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구상 공사 크레인 4대 중 1대가 이곳에 몰려 있다.
최근 또 다른 명물이 등장했다. 부르즈 칼리파 앞에 가로 93m, 세로 150m 규모의 직사각형 액자 모양 전망대 ‘두바이 프레임(두바이 액자)’이 생겼다. 2020년에는 부르즈 알아랍 호텔 양쪽 바다에 호화 인공섬 ‘마르사 알아랍(아랍의 항구)’이 완공된다. 두바이 엑스포에 맞춘 명물이다.
두바이는 아랍어로 ‘메뚜기’를 의미한다. 반세기 전 가난한 어촌 기슭에서 뛰던 작은 메뚜기가 이렇게 높이 뛰어오를 줄 누가 알았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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