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구체적 요구엔 '모호한 입장'
문혜정 중소기업부 차장 selenmoon@hankyung.com
취임 한 달여가 지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수호천사’다. 과거 모 보험회사의 광고 문구가 떠오르지만 그는 언론이나 기업인을 만날 때마다 혹은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이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홍 장관은 취임식에서부터 “저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대변인이자 진정한 ‘수호천사’가 될 것임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이후 줄기차게 이 단어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새로 출범한 중기부의 정체성과 정책 목표를 수호천사란 말이 잘 드러낸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19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튀는 발언으로 이목을 끌었던 홍 장관은 쉽고 직설적인 화법을 즐겨 사용한다. 수호천사란 말도 이런 그의 성향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기댈 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수호천사를 갖고 싶다.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시대, 자금과 인력, 기술이 늘 부족한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라면 더욱 그럴 터다.
홍 장관은 중소기업의 수호천사가 되려고 노력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도 한껏 몸을 낮추고 의견을 듣는다고 한다. 취임 직후부터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근절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내년에 집행할 각종 정책자금도 사회적 책무(일자리 창출)를 다하는 기업이나 창업기업(소상공인),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최저임금 인상 차액 보전 자금) 수령 기업, 정부에 이들 자금을 처음 신청해 받는 기업 등에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기업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그를 수호천사로 여길 기업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기업계에선 ‘중기부가 누구를 위한 신설 부처고 누구의 수호천사인가’란 자조 섞인 불만도 나오고 있다. 상승폭(16.4%)이 커진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주당 최대 68시간→52시간) 등 논쟁이 뜨거운 이슈에 대해 홍 장관이 중소기업인(소상공인) 편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기업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해 노력하겠다”거나 “(업계의 요구에) 공감하며 중기부가 역할을 하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주로 내놓고 있다.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으로 기대한 중기·소상공인들 사이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인은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는데도 중기부는 현장실태조사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물론 홍 장관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등의 목표를 놓고 근로시간 단축 등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공언한 그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중소기업계에 관철시켜야 할 숙명이 그에게 있다.
지난 26일 홍 장관과 중소기업인들의 간담회에서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그동안 중소기업계는 노동 환경 등 여러 문제에서 각 부처를 상대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중기부가 수호천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초대 중기부 장관은 누구의 수호천사로 기억될지 지켜볼 일이다.
문혜정 중소기업부 차장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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