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 비극적 결말… 사람 아닌 제도 문제"
"제왕적 대통령제 놔두면 같은 실패 반복될 것
헌법 개정으로 사정기관을 독립기관으로 만들어야"
[ 김형호 기자 ]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 없이는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은 없다.”(김원기·정의화 전 국회의장)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실패한 것은 사람보다 제도의 한계다.”(임채정·김형오 전 국회의장)
역대 국회의장들은 한목소리로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를 현행 헌법의 최대 맹점으로 꼽았다.
노무현 정부(김원기·임채정 전 의장)부터 이명박 정부(김형오 전 의장) 박근혜 정부(정의화 전 의장)까지 지난 15년 동안 보수·진보 진영 국회수장들은 내년 제헌 70주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한 연쇄 인터뷰에서 예외 없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는 한국 정치가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특히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감사원장 등 5대 권력기관장 인사권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28일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비겁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판이 우리 정치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1979년 정치에 입문해 2008년 17대 국회까지 30년 동안 정치권에 몸담은 정치 원로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정의화 전 의장은 “국민은 훌륭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통령 주변에 줄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현 권력구조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권력은 오염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직 국회의장들은 대통령의 인사권 축소를 개헌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김형오 전 의장은 “검찰청장, 감사원장 등 주요 권력기관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없애고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일부는 국회로 갈 수밖에 없지만, 권력기관은 최대한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 국회 수장인 임채정 전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제 구조를 놔두고 사람의 문제로 접근하면 대통령의 선의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또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임 전 의장은 4대 권력기관 인사권뿐 아니라 대통령이 갖고 있는 예산 편성권, 법률 제청권까지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인 인사권뿐 아니라 국민 세금을 정부가 쓸 곳을 마음대로 결정한 뒤 나중에 책임도 안 지는 현행 예산 편성권과 법률 제안권을 미국처럼 의회로 넘겨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대 대통령의 예외없는 비극적 결말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정치 원로들은 누구보다 강한 톤으로 현행 대통령제의 역설을 웅변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미국 역사가인 아서 슐레진저가 1973년 닉슨 행정부의 권력남용을 지적한 저서 《The Imperial Presidency》에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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