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도 '적폐'로 몰리나

입력 2017-12-28 18:41  

민간 혁신위 "초법적 통치행위"… "대안 없는 외교·안보 비판" 지적도
문재인 대통령 "위안부 합의 중대한 흠결"… 일본 정부와 재협상 시사

통일부 혁신위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박근혜 전 대통령 일방적 지시로 결정"
"폐쇄 땐 피해 적지않다는 통일부 의견, 청와대서 묵살"
전문가 "현재 시점 기준으로 과거 정책 판단하는 건 신중해야"



[ 정인설/이미아 기자 ] 문재인 정부 들어 발족된 통일부의 정책자문기구가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지지 않은 초법적 통치행위라고 판단했다. 4차 핵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잇단 도발로 촉발된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사실상 적폐로 규정한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이어 대북정책에 이르기까지 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전문가 아홉 명으로 구성된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28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 지시에 따라 작년 2월10일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정책혁신위는 지난 9월20일 발족해 3개월여간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과정을 점검한 뒤 정책혁신의견서를 냈다. 통일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정책혁신위는 의견서에서 “박근혜 정부는 헌법상 긴급처분이나 남북교류협력법상 협력사업 취소 같은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했다”며 “안보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해당 조치는 반드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 재협상 또는 합의 폐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한·일 관계 악화 같은 외교적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통일부 혁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전반적으로 검토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과 남북회담, 민간 교류협력, 통일교육 등으로 나눠 당시 정책 결정 과정에 문제점은 없었는지를 살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해 소통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봤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거쳐 작년 2월10일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내렸다고 했지만 혁신위는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작년 2월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하고 이틀 뒤 NSC 상임위원회가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게 혁신위 시각이다. 혁신위는 “헌법상 중요한 대외정책은 국무회의 심의사항인데 중단 결정 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하는데 박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로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운영을 갑자기 중단하면 피해가 적지 않다는 의견을 통일부가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당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대통령의 지시’라며 거부해 통일부도 즉각 철수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혁신위는 또 2013년 남북회담 도중 북한에 강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우리 측 수석대표를 교체했다고 소개했다.

혁신위는 또 작년 4월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의 집단 탈북과 같은 해 8월 태영호 전 북한 공사 망명을 통일부가 발표한 것은 탈북 사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던 관례와 배치된다며 북한 정보사항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난 정부의 통일교육이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증폭시켰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혁신위는 북한 인권문제나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혁신위 위원들이 남북 교류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진보 진영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27일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평가한 위안부 검토 태스크포스(TF) 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정부 정책을 자의적 기준으로 판단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외교·안보 정책 수립 시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대통령마다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나 당시 상황이 다를 수 있는데 현재 관점이나 특정한 기준으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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