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생계형 '장발장 사면'
운전면허 제재 등 165만명 구제
생계형 절도·고령수형자 등 석방
"경제인 사익 추구 범죄는 제외"
재계 "기업인 복권 안돼 아쉽다"
[ 김주완/조미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취임 이후 첫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봉주 전 의원, 용산참사 관련자 등 총 6444명을 사면하고 운전면허 관련 행정 제재 대상자 등 165만 명을 감면했다. 불우한 생계형 범법자 위주의 ‘장발장 사면’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경제인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면은 30일 0시 발효됐다.
◆서민생계형 ‘장발장 사면’
정부는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2018년 신년 특별 사면안’을 의결했다. 이 총리는 “이번 사면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대상자를 선정했다”며 “국민 통합을 고려해 소수의 공안사범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했지만 공직자와 경제인의 부패범죄와 각종 강력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면은 ‘서민생계형’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사면 대상자의 99.6%가 도로교통법규를 위반해 운전면허 행정 제재 조치를 받은 범법자다. 음주운전, 난폭·보복 운전 등의 법 위반자는 제외됐다. 154만9223명의 교통법규 위반 벌점이 전부 삭제된다. 면허 정지·취소 처분을 받거나 해당 절차가 진행 중인 3만9657명은 바로 운전할 수 있게 됐다. 운전면허증을 일정 기간 취득할 수 없었던 6만2095명은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겼다.
불우·생계형 수형자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슈퍼마켓에서 소시지 17개와 과자 1봉지를 훔쳐 징역 8월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범법자가 대표적이다. 또 만 70세 이상의 고령 수형자 2명, 중증질환의 수형자 8명, 유아 대동 수형자 2명 등도 석방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면의 핵심은 딱한 처지의 수형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장발장 사면’”이라고 말했다.
◆정봉주, 정치인 중 유일…기업인은 0명
경제계의 관심사였던 기업인 사면은 없었다. 정부는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경제인의 사익추구 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범죄 사범들은 처음부터 사면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부터 5대 중대범죄와 반(反)시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는 아쉬운 표정이다. 한 경제계 인사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형을 마치거나 집행유예 중인 기업인의 복권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가능한 선택인데 이번에 포함되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정치인으로는 정 전 의원이 유일하게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2022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됐지만 이번 특별 복권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법무부는 “복역 후 만기출소했고 형기 종료 후 5년 이상 지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용산철거민 25명·공안사범 사면·복권
2013년 1월 이후 5년 만에 공안사건 관련자가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정부는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하다가 사법 처리된 철거민 25명도 사면 대상에 올렸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회적 갈등 치유와 국민통합 차원에서 수사 및 재판이 종결된 용산 사건 철거민을 사면·복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면 대상으로 검토했던 제주해군기지, 경남 밀양 송전탑, 사드,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된 집회 참가자들은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재판에 계류 중인 대상자들은 사면 대상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 사면을 요구해온 한명숙 전 총리, 이광재 전 의원, 이석기 전 의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도 사면·복권 대상에서 제외했다.
김주완/조미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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