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이 듦에 대하여

입력 2017-12-31 16:23  

성백현 < 서울가정법원장 bhsung@scourt.go.kr >


새해다.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365일을 1년으로 정했다지만, 그중 어느 하루를 어떻게 골라내 한 해의 시작이라 했을까 생각하면 그저 오묘하기만 하다. 그리고 한편,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별다를 것 없는데 하룻밤 사이에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 하니 그 셈법에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사람은 늙는다. 뛰어난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더라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때를 대비해 저축하고, 건강 관리를 한다. 걸어서 지구 10바퀴를 여행할 수도 있는, 맛집 1만2000곳을 찾아갈 수도 있는, 은퇴 후 10만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어느 금융회사의 광고 문구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한 노후를 즐기며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과연 노후 대비는 저축과 건강관리, 그것으로 충분한가? 가정법원을 찾는 노부부가 매년 늘고 있다. 황혼 이혼은 이미 전체 이혼 건수의 30%를 넘었다. 졸혼(卒婚) 역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다. 30여 년은 족히 함께하며 자식을 길러내고 부모님을 여의는 기막힌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두 사람 사이의 미움과 불신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깊다.

노후를 대비해 젊은 시절부터 저축하고 건강 관리하듯 일찍부터 배우자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더라면, 그들도 젊은 날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일 소중한 벗을 가까이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장성한 자녀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서로 의지하며 곁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함께하는 노후를 꿈꾼다면 이제라도 흰머리가 늘어가는 남편을, 아내를 더욱 소중히 여길 일이다. 나이 듦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뛰어난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더라도 이 역시 피할 수는 없다. 아직은 남의 일이라며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주제이지만, 한 번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봄직도 하다. 그리고 남겨질 가족의 삶도 함께 그려 볼 일이다.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지금, 혹시라도 내가 나를 잃게 되었을 즈음을 대비해 나의 신상에 관한 결정을 대신해줄 사람을 후견인으로 정해 둔다거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전 증여재산과 유류분을 꼼꼼히 검토한 유언장을 써두는 것도 좋겠다. 가족을 잃은 애도의 과정이 유산 분쟁으로 변질돼 서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지 않도록 때 이른 고민이라도 시작해 보면 좋겠다. 새해 아침. 다시 한 번 삶을 생각한다. 삶은 죽음이 있어 더욱 귀한 법이다.

성백현 < 서울가정법원장 bhsung@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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