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 문구들은 평범하고 정형화된 틀에 박혀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NSS는 중요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대통령의 직관이 노련하면서도 상식적인 국가안보팀 관점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은 전통적 글로벌리즘을 강조하는 미국 외교정책과는 거리를 두고 오히려 아주 오래된 전략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도 '대양파'와 '대륙파' 대립
영국은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구축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장기간 패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 대륙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두 가지 정책노선이 대립했다. 하나는 유럽 주요국과 긴밀한 협력과 동맹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대륙(continental)파’였다. 다른 하나는 영국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유럽을 등지고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양(블루워터)’전략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논쟁은 대양파와 대륙파의 대립이 지금도 영국 정치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대립은 영국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해군력과 통상 파워를 자랑하는 미국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대 미국에서 대륙파들은 대서양 세계에 초점을 맞춰, 냉전 시대 동맹국끼리 구축한 국제기구로 맺은 깊은 관계야말로 국제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 줬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실천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미국에 가장 현명한 외교정책은 이런 국제기구 및 서구 우방국과 함께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은 오히려 대양파와 생각이 가깝다.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시대 대양파는 더 넓은 세계에 관심을 둠으로써 영국이 위대한 힘과 부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었다. 유럽 국가와의 복잡한 외교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영국은 힘을 길러 전 세계에서 존경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것이 지금 미국이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을 내리는 지침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정권은 중국 등과의 무역이나 지정학적 경쟁자들과의 현재 무역 협정이 상대방을 부당하게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지정학적 패권 경쟁에서 다자적 기구나 국제법의 원리 원칙에 따른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번영 강조는 대양파의 유산
유럽보다 아시아,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보다 현실주의, 글로벌 연대보다 미국의 번영. 이것이 트럼프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국가안보팀 전문가들의 실용적인 접근을 융합시킨 전략이다. 현대 외교정책에서 대양에 근거한 접근을 하더라도 서방 국가를 버리거나 민주주의적 이상을 버릴 필요는 없다.
블루워터를 외치는 전략가들은 다자간 틀이 아니라 미국의 힘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 러시아, 이란, 그리고 북한이 미국의 힘에 도전하고 승리한다면 서방 세계는 한층 약화되고 결국 붕괴할 것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팀은 외교정책에 관련된 트럼프 개인의 의지와 공화당 주류의 생각을 적절히 맞추는 길을 찾아냈다. 이번의 NSS는 정권이 무엇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가에 대한 원칙과 컨센서스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월터 러셀 미드 미국 바드대 외교학과 교수가 ‘Trump’s Blue Water Foreign Policy’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 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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