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 이수빈 기자 ] 유통업은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한발 앞서 생각하지 않으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기 쉽다. 오프라인 매장의 주도권은 빠르게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가격뿐 아니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까지 비교한다. 이들은 더 편하고 동시에 더 즐거운 쇼핑경험을 원한다. 업체들은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쉴 새 없이 경쟁한다. 인공지능(AI) 활용도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고, 헤쳐나가기 위한 유통업체들의 노력은 새해에도 치열하다. 그리고 그 방향은 각 사의 신사업팀에서 엿볼 수 있다. 백화점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홈쇼핑 업체 등의 신사업팀을 차례로 소개한다.
롯데백화점 AI팀, '엘롯데 쇼핑봇'이 우리 첫 작품
작년 1월 롯데백화점은 인공지능(AI)팀에서 일할 사람을 사내 공모했다. AI팀은 IBM의 클라우드 인지 컴퓨팅 기술인 ‘왓슨’ 솔루션을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팀이다. 나이와 경력 상관없이 지원받았다. 정보기술(IT) 경력자, 고객분석(CRM), 마케팅 기획 분야 8명으로 AI팀이 꾸려졌다.
이들이 처음 선보인 AI가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온라인몰 ‘엘롯데’에서 공개한 쇼핑가이드 로봇 ‘로사’다.
AI팀이 하는 일은 주로 빅데이터를 취합해 AI를 훈련하는 작업이다. 이들은 소비자서비스센터에서 소비자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대화 유형을 분류한 뒤 AI를 훈련했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확률인 ‘AI 인식률’을 높이기 위해 임직원 3000여 명에게 수시로 테스트했다. 86%였던 인식률은 91%까지 높아졌다.
롯데백화점은 엘롯데에서의 소비자 반응을 반영해 로사를 개선한 뒤 이달에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로사를 운영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엘롯데 앱을 설치하면 로사를 활용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쇼핑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합해 AI를 활용한 유통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것은 롯데백화점이 처음이다. 김명구 롯데백화점 옴니채널담당 상무는 “장기적으로는 애플의 ‘시리’처럼 생활 전반에 걸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AI 비서로 로사를 업데이트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원테이블팀, HMR 개발 위해 전국 명인 찾아
이제왕 현대백화점 원테이블팀 바이어는 작년 3월 경북 울릉도로 향했다. 울릉도 자생식물인 ‘부지깽이나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바이어는 “부지깽이나물이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한국식품연구원 연구결과를 본 뒤 가정간편식(HMR)으로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울릉도 현지 식당조리법대로 가마솥에 다시마 우린 물을 써서 지은 부지깽이 나물밥을 작년 11월 출시했다. 이와 함께 탕 볶음밥 등 총 25종의 HMR 제품을 내놨다.
현대백화점은 프리미엄 HMR 브랜드인 원테이블을 출시하기 위해 작년 초 전담팀을 출범시켰다. 팀원 10명은 맛도 건강에도 좋은 HMR을 개발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1주일에 3~4일은 특산물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각 지역 식품 명인을 발굴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였다.
원테이블팀이 개발한 제품들은 주 타깃층인 30~40대 주부와 유명 한식당 봉우리의 장경훈 대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이십사절기의 고세욱 대표 등으로 구성된 맛 평가단 테스트를 거쳤다. 이들 제품은 출시 두 달 만에 현대백화점에서 5만9000세트가량 팔렸다.
원테이블팀은 올해 죽순밥, 벌교 꼬막밥 등 신제품 50여 개를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들 제품은 원래 하반기에 낼 계획이었지만 출시 시기를 상반기로 앞당겼다. 판매처도 현대백화점뿐 아니라 아울렛 점포와 온라인몰·홈쇼핑 등으로 넓힌다는 방침이다.
신세계백화점 시코르팀, 화장품 마니아 18명 뭉쳤어요
신세계백화점 시코르팀 직원 18명은 모두 화장품에 빠져 있는 ‘코덕(코스메틱 덕후)’이다. 팀원 중 남자직원 두 명도 매일 색조화장을 한다. 시코르팀은 신세계백화점이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를 내기 위해 2016년 꾸린 팀이다.
시코르팀의 평균연령은 32세. 작년 새로 문을 연 시코르 매장 다섯 곳이 이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꾸며졌다. 김현아 시코르팀 바이어는 “평소 화장품을 쇼핑할 때 불만족스러웠던 점들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장 콘셉트가 세워졌다”고 말했다. 눈치 보지 않고 화장품을 마음껏 테스트해볼 수 있는 매장, 민낯으로 들어와서 화장품을 발라보며 놀 수 있는 코덕들의 놀이터. 시코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좋은 브랜드를 발굴하는 것도 시코르팀의 몫이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수시로 둘러본다. 숨어있는 소비자 수요를 파악해 새로운 ‘스타 브랜드’를 키워내기 위해서다. 매일 쏟아지는 신제품을 직접 발라보고 업체도 탐방한다. 이렇게 발굴한 단독브랜드는 바이테리, 그로운 알케미스트 등 20개가 넘는다.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던 중소기업 브랜드인 ‘헉슬리’는 시코르에 입점한 뒤 매출이 5배 뛰었다.
시코르팀은 이달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새로운 시코르 매장을 연다. 직장인이 많은 상권 특성에 맞춰 새로운 체험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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