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간섭과 설계주의 담은 개헌안 토양
"보편성과 추상성이 법의 본질" 직시해야
제헌(制憲) 70주년이다. 전쟁까지 겪었지만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 모델로 성장해왔다. 대한민국이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를 함께 이룬 것은 국가사회적 정향과 지향점이 분명했기에 가능했다. 그 기초와 토대가 헌법이다. 우리 헌법이 수호해온 이념적·정치적 가치와 국가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다. 사유 재산과 사적 자치 기반의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완성하고 강국으로 나아가게 한다.
최근 개헌 논의를 지켜보면서 70년 헌법의 근본 가치와 발전 방향을 거듭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국회의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에 심대한 우려를 감출 길 없다. 논의단계라고는 하지만, 좌편향 수준을 넘어 ‘사회주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도 있는 무서운 시도가 엿보인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만든 헌법 개정 시안이 그렇다. 시안은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고 ‘평등한 민주사회’를 담았다. 국가체제의 근간을 바꾸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노조의 경영 참여, 정리해고의 원칙적 금지, 기간제·파견제 금지, 적절한 소득보장 등을 독립적 헌법 조항으로 담자고 한다. 현행 헌법과 맞지 않는 ‘사회적 경제 발전’까지 독립 조항으로 넣었다. ‘자유’‘시장’은 형해화되고 국가 주도의 ‘사회적 경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더욱 강화하고, 위헌 판결이 난 ‘토지공개념’까지 되살려내려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굴뚝공장의 아젠다를 담겠다는 것”이란 문제제기가 자문위 내부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핵심 쟁점이었던 국가의 거버넌스(권력구조)는 결론을 못 냈다고 한다. 개헌 논의가 ‘1987년 체제’에 대한 반성과 대통령-국회 간 권력 조정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돌아보면 어이가 없다. 대통령 직선제에 목을 맸던 1987년 헌법 개정 때 미흡했던 개인의 자유·권리를 더욱 보호하고, 이후 30여 년간 변한 사회상을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행정부와 입법 권력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개헌논의가 이렇게 된 데는 ‘법률만능주의’하에 너무도 쉽게 법을 만들고 있는 국회 책임이 크다. ‘만들면 법’이라는 의회 독주는 ‘법의 타락’을 초래했다는 전문가들 지적이 적지 않다. 20대 국회 1년 반 새 발의된 기업 법안이 1000개에 달하고, 이중 690건이 규제법안이라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쓴소리가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입법부인 국회 구성원들이 법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갖는 보편성과 추상성에 대한 깊은 성찰도, 법과 정치의 차이에 대한 보편적 인식도 보이지 않아서다. ‘모든 법 위의 법’인 헌법이 이렇게 가볍게 다뤄지고 있는 데는 법 경시를 일삼는 국민의 책임도 없지 않다. 소방차 주차구역을 무시하고, 심지어 소방서 앞 공간까지 불법주차로 가로막는 국민의 법 의식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지경이다.
개헌이 아니더라도 국가 주도의 경제 설계, 개입주의가 명분과는 정반대로 온갖 재앙만을 초래했음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지대 추구 풍토 등의 부작용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으로 일군 번영의 토대를 허물겠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