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세계경제 3.7% 성장 전망…석유수요 일본 150만 배럴↑ 예상
비OPEC가 수요 증가분 80% 충족…재고는 최근 5년 평균치 웃돌아
6월 OPEC 총회 감산여부·'베네수엘라 위기'가 유가에 충격 줄 수도
이달석 < 에너지경제연구원·선임연구위원 >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017년 들어서면서 감산에 돌입했다. 2014년 이후 공급 과잉과 저유가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을 벌인 OPEC이 감산을 결행한 것이다. 반면 저유가로 감소 추세를 보이던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은 OPEC의 감산으로 유가가 상승하자 빠르게 증가했다. 연말에는 이슬람 종파 갈등 등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이 국제 유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년과 다름없이 지난해에도 국제 석유시장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국제 원유가격은 중동산 두바이유 기준으로 2017년 배럴당 평균 53.2달러를 기록, 전년도 평균 가격인 41.4달러에 비해 29% 상승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1월 이후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고, 12월29일 연중 최고가격인 64.3달러를 기록하며 한 해를 마감했다. 이렇게 지난해 국제 유가를 상승시킨 요인으로는 OPEC 산유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감산참여국의 감산 이행, 세계 석유 수요의 견고한 증가, 달러화 약세, 지정학적 불안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유가의 추가 상승을 억제한 요인은 미국과 OPEC 감산 면제국인 리비아·나이지리아의 원유 생산 증가 등이다.
올해에도 국제 유가는 석유 수급은 물론 세계 경제 상황, 달러화 가치, 지정학적 사건, 기후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올 12월 말까지로 예정된 감산기간 종료를 앞두고 논의될 OPEC의 감산 출구전략도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여전히 유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올해 세계 석유 수요는 전년 대비 하루 150만 배럴 증가해 지난해 증가분 추정치와 비슷한 수준의 증가폭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7%로 지난해의 3.6%보다 다소 높지만 석유 수요 증가를 주도해온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저유가에 의한 소비 촉진 효과가 점차 소멸하는 것도 수요 증가세가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다.
두바이유 64.3弗 최고치 마감
공급 측면에서는 올해도 OPEC의 감산과 미국의 증산이 힘겨루기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증가 속도가 느려져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생산의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미국 원유시추기 수는 2017년 1분기의 137기 증가에서 2분기에는 94기 증가에 그쳤고 3분기에는 6기 감소했다. 하지만 유가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인 11월 이후 원유시추기 수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더해 연말의 유가 상승이 셰일오일 생산업체들로 하여금 손익분기가격이라 할 수 있는 배럴당 50달러 이상에서 2018년 유가에 대한 헤지(hedge)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생산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비OPEC 전체 공급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증가와 함께 캐나다의 오일샌드 신규 프로젝트와 카자흐스탄 신규 유전에서의 생산 증가 등으로 지난해보다 하루 12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급균형으로 재고 줄지 않을 것
이처럼 비OPEC 공급 증가분이 수요 증가분의 80%가량을 충족함에 따라 대(對)OPEC 원유 수요(call on OPEC)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석유수급 상황이 그러하므로 OPEC은 러시아 등 비OPEC 감산참여국과 협력해 높은 감산준수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1월30일 열린 OPEC 총회에서는 그동안 내전과 정정 불안에 따른 생산 차질을 고려해 감산이 면제된 리비아 나이지리아에도 생산 한도를 부여했다. 두 나라의 생산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올 하반기 국영 아람코사의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도 석유시장의 안정과 유가 부양을 위한 감산 합의가 비교적 잘 지켜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사우디는 ‘비전 2030’이라는 이름의 경제개혁계획 일환으로 아람코의 지분 5%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국부 펀드를 조성하려고 한다. 주목할 사항은 6월로 예정된 차기 OPEC 총회 결과다. 감산참여국은 지난번 OPEC 총회에서 감산기간을 당초 2018년 3월 말에서 12월 말까지로 연장하되 다음번 총회에서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합의 내용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어쨌든 올해 OPEC의 생산은 지난해보다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생산을 현 수준에서 통제하더라도 양국의 생산이 연평균으로는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이고, 감산 출구전략이 확실하지 않으면 감산참여국의 감산준수율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석유의 수요와 공급은 겨우 균형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석유시장에 누적돼 있는 석유재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석유재고는 과거 5년 평균에 비해 여전히 1억800만 배럴(약 4%) 많은 양이다. OECD 석유재고가 과거 5년 평균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은 OPEC-비OPEC 감산참여국이 공식적으로 천명한 ‘석유시장 안정’의 구체적인 목표다. 석유시장의 수급이 가까스로 균형을 이룬다면 재고 감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달러가치 변동에 의한 영향 '미미'
올해 유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지정학적 요인들은 사우디-이란 간 갈등과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위기, 이란 및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의 독립투표 여파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600억달러가 넘는 해외 채무로 부도 직전에 놓인 남미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심해지면 국제 유가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에너지정보업체 EI는 베네수엘라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 2018~2019년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이 현재 생산의 거의 절반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달러화 가치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에 의한 강세 요인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테이퍼링 시행에 의한 약세 요인이 교차해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지정학적 불안 요인 주시해야
세계 경제의 상황 변화도 유가에 변수가 될지 모른다. 세계 경기가 확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확실한 통상정책,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의 악영향 등 여러 위험 요소가 있다.
종합해보면 올해 국제 유가는 OPEC의 감산과 신흥국의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비OPEC 공급 증가와 누적된 석유재고로 크게 상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OPEC의 석유시장 안정을 위한 노력과 지정학적 불안 등은 유가 하락을 억제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국제 유가는 연중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두바이유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한 배럴당 55~60달러에서 연평균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세계 경기 확장의 가속화로 석유 수요가 예상보다 더 증가하거나 지정학적 사건에 의해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유가는 전망치보다 높아질 것이다.
이달석 < 에너지경제연구원·선임연구위원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