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매물로 거론되는 숨겨진 이유는?

입력 2018-01-03 08:44  



(허란 국제부 기자) ‘넷플릭스 당하다(Netflixed)’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영화·방송업계 파괴자로 불리는 넷플릭스가 인수합병(M&A)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시티그룹은 최근 분석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인터넷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를 인수할 확률이 40%”라고 말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애플의 자금력이 꼽힌다. 애플이 해외에 쌓아둔 이익잉여금만 2520억달러(약 267조원)에 이른다. 시티는 애플이 세금을 제하고도 이 돈의 3분의 1을 투자하면 넷플릭스를 인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세제 개편이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번 돈을 본국에 송금할 때 최대 35%의 송금세를 내야 했지만 새 제도는 1회에 한해 15.5%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넷플릭스가 매물로 거론되는 숨겨진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의 ‘진짜 주인’(지분율 84.25%)은 캐피털리서치 뱅가드 블랙록 등 980개 기관투자가들이다. 창업주인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의 지분율은 2.7%에 불과하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지분율 24%),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17%)와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2002년 넷플릭스의 기업공개(IPO) 직후만 해도 헤이스팅스의 지분율이 14.8%였지만, 매달 스톡옵션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지분율이 희석됐다.

헤이스팅스는 3%도 안 되는 지분율을 갖고도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올해 업계 최대 투자규모인 80억달러(약 8조9000억원)를 오리지널(자체 제작) 콘텐츠에 쏟기로 결정한 것은 그의 ‘친위부대’로 꾸려진 이사회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넷플릭스는 주주 구성 면에서는 공화국이지만 실제 운영은 독재정권”이라며 열악한 지배구조를 지적했다.

기관들은 2011년 이후 넷플릭스에 이사회 구성과 관련 규정을 바꾸라고 수십 차례 요구하며, 헤이스팅스의 독주를 막으려 시도했다. 넷플릭스는 이런 요구를 무시했고, 이사 임기를 각각 다르게 해 매년 주주총회를 열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주가 상승기엔 지배구조가 나빠도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넷플릭스 주가는 지난해 60% 급등하며 200달러(10월16일)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180달러대까지 미끄러지는 등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2년 10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이 일반주를 9.98%까지 사들이자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포이즌필’을 채택했다.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값에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해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주가 하락기에 주주들에게 ‘미운털’까지 박힌 경영자가 우군을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 (끝)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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