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재건축사업을 인가하면서 재건축사업과 무관한 주차장, 공원 등을 수백억원 들여 조성한 뒤 지자체에 공공기부(기부채납)하라는 조건을 달았더라도 재건축조합에 아무런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대법원 2017. 8. 24. 선고 2014다206709 판결)
경기 Y시는 2006년 재건축조합 사업시행계획 변경을 인가하는 조건으로 시 소유 땅을 매입해 주차장과 공원을 조성해 시에 공짜로 돌려주는 기부채납을 요구했다. Y시는 재건축사업 기회에 시의 숙원사업을 ‘끼워 넣기’ 한 것이다.
‘을’의 입장인 조합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토지매입비 205억7000여만원, 공사비 84억5000여만원을 들여 지하주차장과 공원을 조성해 시에 기부했다. 그 후 조합은 Y시를 상대로 기부채납 요구가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비례의 원칙’에 위반돼 위법하다는 이유로 토지매입비 등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물론 대법원도 Y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쉽사리 납득하기 힘들고, 너무 지자체 편을 든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법원은 인가 조건으로 기부채납을 내건 점에 어느 정도 위법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춰 볼 때 실체상으로 그로 인해 조합이 입은 손해를 시가 전보해야 할 정도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거나 그 직무를 수행하는 보통의 일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이 사건 부담의 부과 및 매매계약 체결 담당 공무원에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한 직무 집행상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모호한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이 기부채납은 인허가 관청의 대표적인 ‘갑질’의 하나인데, 그동안 이를 규제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택법은 2005년 “해당 주택건설사업 또는 대지조성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공공청사 등 용지의 기부채납이나 간선시설 등의 설치에 관한 계획을 포함하도록 요구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신설했고, 국토교통부가 직접 나서 기부채납을 제한하는 ‘주택사업 관련 기반시설 기부채납 운영기준’을 마련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지자체의 뿌리 깊은 ‘갑질’ 사고가 쉽게 바뀌지 않는 배경에는 법원의 관대한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 지자체가 사업과 무관한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부담을 지운 경우에조차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거의 전무하다. 적폐 청산의 시대에 지자체의 ‘갑질’ 사고를 근원적으로 바꾸는 사법부의 용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재권 < 법무법인 효현 대표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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