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반 더 튼튼히
주고객인 LGD, 중국에 OLED공장… 장비 수요 크게 늘어날 가능성
혁신해야 생존 가능
리더가 리스크 감당해 '솔선수범'… 목표·방법 제시하고 시스템 세워야
창업 활성화·상생의 조건은
세계 시장서 통할 벤처기술, 정부와 사회가 적극 보호해야
[ 문혜정 기자 ]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장비를 제조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회사는 두세 번의 큰 격랑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기술력 덕분이다. 반도체 원자층증착장비(ALD)를 독자기술로 국산화한 이 회사는 세계 최초 기술 12건, 특허 2000여 건을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리더십도 한몫했다.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시절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됐을 정도로 벤처기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업계에선 ‘혁신 전도사’로도 불린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잡고 있다. 중국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푸젠진화반도체, 이노트론메모리, 칭화유니그룹과 YMTC 등 현지 반도체업체들이 본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엔 위협이지만 국내 장비업체들에는 기회다. 이뿐만 아니다. 주 고객의 하나인 LG디스플레이가 5조원을 들여 중국 광저우에 대규모 대형 OLED패널 공장을 짓는다. 이 때문에 시장의 기대가 크다. 황 회장은 “올해 (회사 도약의) 기반을 닦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영원히 가는 시장이라고 본다”며 “올 하반기부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장비수요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반도체업체들이 한국산 장비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초기 단계여서 이제 공장을 짓고 설비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D램 양산을 언제부터 할지는 모르지만 추격은 빠를 겁니다. 중국은 국가가 참 영리합니다. 국가가 사업가나 마찬가지예요. 중국 업체들도 경쟁을 시켜서 잘하는 쪽을 밀어줍니다.”
▷장비 투자가 언제쯤 본격화될까요.
“이제 막 온돌에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고 봐야 합니다. R&D가 아직은 파일럿 단계이기 때문이죠. 상용화를 위한 투자는 올 하반기는 돼야 할 겁니다. 그때부터는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요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일본 업체들이 먼저 수혜를 입을 것이고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올 것입니다.”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기술을 쫓아오려면 10년 정도 걸리겠지만 메모리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이 중요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글로벌 주자들의 하이엔드(high-end: 고사양) 메모리가 로엔드(low-end: 저사양) 시장까지 지배하고 있잖아요. 자전거가 필요한데 모두 벤츠나 BMW를 타고 다니는 격이죠. 중국이 3년 정도 뒤면 품질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반도체를 양산하면서 로엔드 시장부터 공략할 겁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소형 최상급 전자기기는 전체 시장의 20~30%라고 봅니다. 대형 장비 등에 중국산 반도체가 적용되면 하이엔드 제품 가격도 급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두 경기를 타는 산업이라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 수익이 줄고 당연히 투자를 줄이겠죠. 그럼 장비업체들도 그대로 타격을 받습니다. 지금 최장기 반도체 호황기를 맞고 있는데, 우리는 반도체 제조사들보다 기술적으로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그들이 무언가 필요로 할 때 그 생산장비를 가져다줘야 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미래의 변화, 미래 시장을 예측하고 선점할 수 있는 리더의 통찰력과 오감이 필요합니다.”
▷‘혁신’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까지는 과거 경험과 지식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선두주자들을 열심히 모방하고 효율성을 높이면 됐지요. 그런데 4만달러까지 가려면 혁신이 동력이 돼야 합니다. 이게 과거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미래를 가져오는 거예요. 과거를 먹고사는 사람은 혁신을 판단할 자격과 능력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혁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리더가 해야죠. 조직의 리더가 명확한 목표를 정의하고 목표의식과 방법을 제시한 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상당수 기업인과 사업가들은 직원한테 올해의 목표와 예산을 잡으라고 해요. 오너가 해야죠. 머리 좋고 스펙 좋고 경험 많은 직원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결정에 따른 리스크를 오너만이 질 수 있으니까요. 혁신은 늘 ‘톱-다운’(위에서 아래로)으로 일어납니다. 대신 제안과 개선, 효율화는 ‘보텀-업’(아래에서 위로)으로 일어나고요.”
▷2011~2012년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웠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시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 한 겁니다.”(웃음) 당시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세계시장의 침체와 태양광업체 도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황 회장은 사재를 털어 유상증자에 성공했고 채권은행들을 설득했다.
▷현 정부도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혁신경제, 혁신성장이 무엇인지 정의를 제대로 해야죠. 혁신과 신뢰는 시간이 변수입니다. 혁신은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이루는 것이고, 신뢰는 시간이 지나면서 커져 성장합니다. 혁신과 신뢰는 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둘 다 요구합니다.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인데 ‘그거 판 적 있어요’ ‘어느 업체가 쓰고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니 혁신이 작동을 안 하는 겁니다. 기업은 혁신을 안 하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도태돼 죽습니다. 혁신을 시도해도 성공하거나 아니면 죽습니다. 기업이나 경제가 무너진 이후에는 시장에서 저절로 혁신이 작동하게 되는데 그러면 너무 늦잖아요.”
▷벤처기업 투자와 창업 활성화가 이슈입니다.
“투자는 리스크가 반드시 따릅니다. 벤처에 투자하면서 손해보면 안 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벤처가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코스닥은 신뢰를 얘기하면 안 됩니다. 혁신성과 성장성, 버블은 한 몸뚱이예요. 호랑이도 태어나자마자 절벽 아래로 밀지는 않습니다. 새끼는 어미가 보호해줘요. 그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상생은 어떻게 봅니까.
“한국이 혁신국가로 가려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우수 기술을 정부와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합니다. 한국이 일본의 워크맨과 정보통신기술(ICT)을 무너뜨린 것은 2000년 무렵 국내 벤처기업이 개발한 MP3플레이어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국의 휴대폰 기술력에는 벤처기업들의 노력도 대거 포함돼 있습니다. 혁신과 신뢰가 같이 태어날 수는 없지만, 벤처기업의 혁신과 대기업의 신뢰가 합쳐지면 세계적인 성공이 가능합니다. 이게 인수합병(M&A)이에요. 100원짜리를 300원에 사서 1000원을 만드는 것, 시간을 절약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진짜 M&A입니다. 100원짜리를 50원에 사서 돈을 벌겠다는 한국식 M&A는 잘못된 것입니다.”
▷후배 기업인과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십시오.
“인재는 뽑고 찾는 게 아니라 키우는 것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일수록 힘든 걸 안 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사소함이 명품을 만들고 사소함의 시작은 오너에서 출발합니다. 더하기 빼기도 못하는 직원을 카운터에 앉혀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리더입니다. 조직원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더 잘해야 하는데 더 편하려고만 해요. 한쪽에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로 가자고 하고, 위험하고 힘든 것은 안 하려고 하고 이런 것들이 대립됩니다. 근무시간은 줄여야 하고 또 잘살아야 하고…. 이걸 정리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몰락할 겁니다.”
■ 황철주 회장은
업무시간 70% R&D에… 신기술로 사업 위기 극복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출생신고가 늦어 주민등록상 출생연도는 1959년이지만 실제로는 ‘58년 개띠’다.
동양공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인 ASM 한국법인에 취직했다. 이때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이 반도체 생산 장비는 대부분 수입한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눈을 떴다. 이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하자 반도체장비 생산에 직접 나서겠다는 생각에 1993년 주성(현 주성엔지니어링)을 세웠다. 회사를 1995년 법인으로 전환했고 1999년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켰다.
황 회장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엔지니어다. 회사가 가진 2000개 이상의 특허(세계 최초 기술 12개) 획득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그가 주성엔지니어링에서 챙기는 업무는 연구개발(R&D)과 신시장 개척 두 가지다. 하루를 사내 연구소 회의로 시작하고 매일 네 시간을 연구인력과 함께 보낼 정도로 R&D에 애착이 강하다.
황 회장은 부침이 많았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2001년부터 삼성전자 납품처에서 배제돼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전자 감사팀이 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전자 구매팀 간 비리 의혹을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지만 결국 거래가 끊겼다. 2011엔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태양광 관련 글로벌 시장의 침체가 시작되면서 다시 위기에 빠졌다. 중국 에너지업체 등으로부터 제때 돈을 받지 못해 2012년 큰 적자(순손실 1102억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술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해 회사가 R&D에 투자한 금액은 매출(800억원) 대비 70%에 달했다.
황 회장은 국내 벤처 1세대로 벤처기업협회장,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을 해왔다.
△1959년 경북 고령 출생
△1985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 설립
△1999년 코스닥 상장
△2010~2012년 제9·10대 벤처기업협회장
△2011 대한민국 기술대상 금탑산업훈장
△2010~2015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2015~2016년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29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광주(경기)=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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