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의 불, 인간의 불

입력 2018-01-08 18:45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rkim@karts.ac.kr >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줬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이 신은 인간에게 문명을 전해준 은신이다.

서양 전통에서 불은 신적 존재이며, 문명이란 신이 하사한 고마운 은총이다. 중국 설화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벼락이 나무에 떨어져 발화하는 모습을 보고 ‘수인’은 나무를 비벼서 불을 피우는 비법을 발견했다. 그의 뒤를 이은 ‘축옹’은 부싯돌을 발명해 더욱 쉽게 불을 얻게 했다. 동양적 전통에서 불이란 인간의 발견이나 발명품이고, 문명 역시 인류가 창조해낸 결과일 뿐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원래 유일신교인데, 예배를 드릴 때 불꽃과 향을 피우는 의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중국인들은 불을 신과 같이 떠받드는 것으로 봐 ‘배화교’라고 한자 이름을 잘못 붙였다. 이 배화 의식은 불교와 유교 의례에 영향을 줘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는 것이 공양과 제사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신의 불이 인간의 불로 변화했다고 할까?

신이 줬건 인간이 만들었건 간에 불의 사용은 곧 이성의 새벽이며 창조의 시작이었다. 불에 음식을 구워 먹으며 인류의 영양과 지능 수준이 급격히 향상됐다. 얼어 죽을 걱정 없이 긴 겨울을 휴식과 창작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었다. 불은 곧 광석을 녹여 청동기와 철기를 만들었으며, 흙을 구워 도자기와 반도체를 만들었다. 특히 불빛은 깜깜한 밤을 밝히는 조명이 돼 자연의 시간조차 지배하게 됐다. 암흑을 밝히는 횃불은 혁명, 촛불은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불이 꼭 문명의 이기인 것만은 아니다. 불의 인간성에 익숙한 중국인들은 급기야 화약을 발명해 파괴와 살상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불의 폭력성은 원자폭탄과 핵무기로까지 발전해 파멸과 종말의 위협이 된다. 북쪽의 정권은 다급해지면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야만적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올림픽 성화는 가장 거룩하고 평화로운 불이다. 올림피아 신전의 태양에서 얻었으니 성화는 신이 준 불이지만, 온 인류를 통해 전해지니 인간의 불이기도 하다. 지금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는 전국을 순회 봉송 중이다. 필자도 그 7500명 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성화 봉송은 온갖 폭력을 종식하고 평화와 화합을 가져와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신도 인간도 바라는 성스러운 불일 것이다.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rkim@karts.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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