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AI 시대, 한국은 준비됐는가

입력 2018-01-10 17:59  

보수적 한국 기업, 신기술에 내부저항 커
AI에 의해 타의적 구조조정 직면할 것

김현석 뉴욕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 김현석 기자 ]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선 지난 몇 년 새 인공지능(AI)에 기반한 ‘퀀트헤지펀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펀드 규모가 작년 10월 말 현재 9400억달러(약 1003조원)에 달한다. 최근 한 퀀트펀드 개발자를 만났다. “직접 알고리즘을 짜지만, AI가 어떻게 그런 좋은 운용 결과를 내놓는지 잘 모른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컴퓨터공학 박사다. 수많은 데이터를 넣고 머신러닝(기계학습)을 시킨 뒤 펀드를 운용하면 결과가 좋은데, AI가 머신러닝을 통해 뭘 알아냈는지 개발자마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미국 국방부는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RC)에 맡겨 ‘AI가 스스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인간에게 말로 설명하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구글은 AI가 AI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인 ‘구글.ai’를 가동 중이다. 인간이 만드는 것보다 더 신속하게 뛰어난 AI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AI들이 서로 대화하며 ‘왜 인간에게 이런 걸 설명해줘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간다면? 상상하기도 무섭다.

미국에선 실업률이 4.1%까지 떨어졌는데도 임금상승률이 제자리를 맴도는 데 대해 여러 추측이 나온다. 아마존 효과(아마존이 상품 가격을 낮췄다)가 가장 큰 원인으로 회자되지만 일부에선 AI를 거론한다. 과거엔 로봇이 단순작업을 대체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주로 고급직업을 대체하고, 비싼 AI가 투입되기 어려운 저임금 일자리만 늘어나는 탓에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지난주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확인됐다. 에드워드 펠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10~2016년 AI에 기반한 이미지 인식, 음성 인식 기술 등이 도입되면서 파일럿과 의사, 과학자 등이 가장 나쁜 영향을 받았고 가정부, 청소업자, 음식점 서비스종사자 등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한국은 지켜볼 뿐이다. AI 관련 인력의 수와 질, 특허, 연구논문 등에서 한국 신세는 미국 중국 캐나다 등에 비교하면 초라하다. 외국에서 공부한 AI 인재를 대거 등용해 개발한 삼성전자의 AI 음성비서 ‘빅스비’도 아마존 에코, 구글홈 등에 밀려 사실상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AI 인재 배출에 실패한 건 학계 이기주의 등으로 칸막이식 교육이 계속돼온 탓에 학생들이 새로운 학문을 접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다 보니 AI에 관심 있는 기업들은 미국 등 해외에서 인재를 찾아 헤맨다. 구글 아마존처럼 AI에 ‘목숨 거는’ 기업도 많지 않다. 모바일 마케팅의 대가인 아닌디야 고즈 뉴욕대 교수는 신기술 채택에 보수적인 한국 기업의 마인드셋을 꼬집었다. 기술은 충분하지만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구조, 구세대 경영진 등으로 인해 신기술을 수용하는 데 내부 저항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과제를 제기한다. 교육과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경쟁력을 잃어가는 기업·산업의 구조개편, 신산업을 키울 수 있는 규제 완화 등이다. 경기가 좋은 지금이 중장기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에 나설 적기다. AI에 의해 타의적 구조조정에 직면하기 전에 말이다.

김현석 뉴욕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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