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국내와 서양의 유명 조각가 전시회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동시에 열려 눈길을 끈다.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종영(1915~1982),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조각으로 표현한 스위스의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주인공이다.
김종영 특별전 ‘붓으로 조각하다’는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다음달 4일까지 열린다. 지난달 22일 개막한 이 전시회는 김종영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동양 전통의 미를 어떻게 서양의 추상적 표현으로 승화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작 ‘80-5’는 그의 이런 예술 세계를 잘 보여준다. 사람 얼굴을 추상화해 표현한 작품으로 조각을 매우 투박하게 했다. 숲속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얼굴을 닮은 나무토막’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사대부 문화를 유지하던 양반 집안의 23대 장손으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 조각을 전공한 게 이런 작품세계를 구축한 배경으로 보인다. 전시회를 주최한 김종영미술관 관계자는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의 일치’ 또는 ‘내재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의 통합’을 보여준다”며 “동서양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실천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전시회에는 조각뿐만 아니라 그의 서예, 서화, 드로잉, 사진, 유품 등까지 모두 180여 점이 전시됐다.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오는 4월15일까지 열린다. 지난달 21일 열린 이 전시회에서는 20세기 서양 철학계를 풍미한 실존주의가 조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120여 점 이상이 전시됐다. 자코메티는 청동이나 석고를 활용해 인간의 흉상 또는 서 있는 모습을 주로 표현했다. 조각의 표면은 거칠고 얼굴은 무표정하며 눈빛은 초점이 없다.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 등 서 있는 모습의 작품은 하나같이 팔다리가 가늘고 길어 위태로워 보인다.
전시회를 주최한 코바나컨텐츠 측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와 대량학살 등을 겪은 인간의 허무와 고독을 응시한 작품”이라며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극한까지 탐구하다 보니 전통적인 조각에서 추구하던 인체의 미학을 과감하게 파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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