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는 김영옥 대령(미군 최초의 아시아계 대대장), 하늘에는 오종구 소령(미 육군항공대 전투기 조종사), 바다에는 안수산 대위(미 해군 최초 아시아계 여성 장교)!”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말이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때 맹활약한 한국계 ‘미국 전쟁 영웅’이다.
이 가운데 안수산(安繡山, 수전 안: Susan Ahn)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3남2녀 중 셋째이자 맏딸.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이라는 이중 장벽을 극복한 여장부로 한국과 미국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안창호가 일제 감시를 피해 미국에서 활동하던 191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독립운동을 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다. 샌디에이고주립대 졸업 이듬해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자원 입대해 미 해군 최초의 아시아계 여군이 됐다. 반(反)아시아 정서 때문에 입대를 거부당했지만 재도전해 사관 후보생이 됐고, 1년 만에 여성 최초의 포격술 장교가 됐다.
해군정보국에 배속됐을 때도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기밀 업무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암호해독가로 뽑혔다. 1946년 전역 후 13년 동안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비밀정보 분석 요원으로 일급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31세 때인 1947년 아일랜드계 미국인 프랜시스 커디와 결혼했다. 여기에도 넘어야 할 벽이 있었다. 당시 백인과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한 ‘인종 간 금혼법’에 저촉됐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법 폐지를 이끌어낸 1967년에야 정식으로 법적 부부가 됐다.
이처럼 온갖 차별을 딛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공로로 2006년 한인 최초의 ‘아메리칸 커리지 어워드’ 수상자가 됐다. 2016년 3월에는 시사 주간지 타임의 ‘이름 없는 여성 영웅’에도 선정됐다.
그의 큰오빠이자 도산의 장남인 안필립(필립 안: Philip Ahn)은 영화배우가 돼 한국계 최초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겼다. 그 동생 안필선(필슨 안: Philson Ahn)과 안필영(랠프 안: Ralph Ahn)도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여동생 안수라(수라 안: Soorah Ahn)는 6·25 전쟁이 끝난 이듬해부터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흥사단과 국민회를 후원하는 등 아버지의 뜻을 이었다.
이제는 안수산의 아들인 필립 안 커디 등 3세대가 그 정신을 잇고 있다. 이들은 안창호 기념사업에도 앞장서 서울 도산공원 건립 때 방한한 뒤 도산의 유품과 자료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올해 65세인 커디는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익혀 도산 관련 연구와 기고에 힘쓰고 있다.
내일은 안수산의 103번째 생일이다. 오는 6월24일은 그의 3주기이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