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적폐 판사와 샐러리맨 판사

입력 2018-01-17 18:12   수정 2018-03-19 11:51

인사불만·법조환경 악화가 판사갈등 '불씨'
서로 비난 말고 매너리즘부터 벗어나야

박해영 지식사회부 차장 bono@hankyung.com



사법부 내홍이 악화일로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가 가려지기 직전이다. 일선 판사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 PC를 확보해 판사들의 성향을 나눈 문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일부 판사의 동향을 정리한 자료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다음달 정기인사를 앞두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요직을 거친 판사들이 대거 사의를 밝힐 것이란 소문까지 돌면서 법원은 더욱 뒤숭숭하다.

작년 3월 법관들의 학술행사를 사법부 수뇌부가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터졌을 때만 해도 논란이 1년 가까이 이어질지는 대부분 예상치 못했다. 이어서 불거진 블랙리스트 의혹은 정권교체와 맞물리면서 사법부 전체를 집어삼켰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고위간부들의 행정권 남용으로 시작된 문제가 판사 사찰 의혹과 ‘적폐 판사’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최근 만난 A 부장판사는 “갈등의 본질은 법관 인사에 대한 불만”이라며 “배경엔 변호사 업계가 힘들어진 것도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관예우가 예전만 못하고 변호사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다 보니 요즘 판사들은 선배들처럼 과감히 법복을 벗지 못한다”며 “일부 엘리트 위주로 이뤄진 승진 인사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고 전했다. 판사로 임용되면 지방법원의 합의부 배석판사로 시작해 단독판사, 부장판사를 거친다. 이후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여부가 가려진다. 기업의 임원에 해당하는 고법 부장급은 약 3000명 판사 중에서 150명 안팎에 불과하다. 고법 부장 승진제도는 법관의 서열화와 관료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정기인사부터 이 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지법과 고법 인사를 분리하는 이원화 방식이 도입된다.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판사들 사이에선 ‘가급적 법원에 오래 남아 있자’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양 전 원장 시절에 도입한 평생법관제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다. 누적되는 인사 적체는 조직의 활력을 뺏어가기 쉽다. B 부장판사는 “주변에 ‘샐러리맨 판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그는 “과거 합의부에선 후배 판사가 재판장과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면서 토론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며 “판사 생활을 오래 해야 하는데 괜히 선배한테 잘못 보이면 득될 게 없다는 생각이 젊은 판사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매너리즘은 결국 국민에게 피해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해 통상임금, 병역 거부 등에 대해 재판부마다 정반대 판결을 내린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법원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나 자성의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판사마다 해오던 관행대로,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오히려 편을 갈라 서로 손가락질하는 판사들이 더 자주 구설에 올랐다. 샐러리맨 판사로 전락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것이 거창한 사법개혁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박해영 지식사회부 차장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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