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왔다 갔다 했다. 원래 방침은 취학 전, 즉 어린이집·유치원 단계에서의 영어교육 금지였다. 논란이 계속되자 미확정으로, 시기 미정으로, 다시 1년 유예로 입장을 바꿨다. 엄밀히 따지면 1년 유예라는 것도 모호하다. 원점 재검토로 볼 여지도 있다.
유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세웠다가 물러선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올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영어 조기·선행교육 과열에 대한 우려가 컸다. 교육부가 유아 발달 단계에 맞춘 ‘적기(適機) 교육’을 강조하며 초등 3학년 이후 영어수업 시스템을 설계한 이유다.
“입시와 경쟁 위주의 왜곡 및 과열된 교육을 바로잡아 유아의 놀 권리를 보장한다.” 취지는 좋았다. 늘 그렇듯 문제는 현실성 부족. 수요자의 ‘선의’가 전제됐을 때 실현 가능한 도덕적 정책이란 느낌부터 들었다.
방과후 영어수업을 막으면 학부모는 자녀를 놀게 할까, 아니면 영어 유치원이나 학원에 보낼까. 당국은 전자를 바랐겠지만 현실은 후자 쪽이다. 마음은 전자여도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하는 학부모도 많다. 전자를 택해야 교육이 바뀐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단 그건 명분에 동의하는 이들이 조직적 실천을 하는 시민운동의 방식이다. 정책이 그래선 곤란하다. 선의와 도덕이 정책의 지향이 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수요자의 도덕적 선의가 아닌 ‘현실적 욕구’를 정책 수립의 기본값으로 두자는 얘기다. 욕구란 게 그리 유별나지 않다.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를 왜 반대할까? 극성 학부모라서? 아니다. 대부분 내 아이가 또래에 뒤지지 않길 바라는 수준이다. 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유아 단계 방과후 영어수업이란 ABC 알파벳에 간단한 영어 단어와 노래를 익히는 정도다. 그걸 ‘영어 주입 유아학대’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데서 일반 학부모와의 간극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진보 성향 교육·학부모 단체는 이참에 사교육까지 포함해 초등 3학년 이전 영어 선행교육을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했다. 이상론에 가깝다. 현존하는 학부모 수요가 있는데 일률적으로 통제할 수 있겠나. 군부 독재 정권이 내린 금지령에도 몰래 과외를 했다. 5공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민간 영역인 사교육을 전면 규제하자는 것부터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일단은 예정대로 시행하는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도 걱정된다. 어정쩡한 스탠스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하는 영어수업을 정작 초등학교에 입학해선 못 하게 됐다. 외국어 교육의 기본인 연속성이 끊긴다.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의 ‘영어 감(感)’을 이어주려 하지 않을까?
학교에 선택지가 없으니 비싼 영어학원으로 눈을 돌리게 될 터이다.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나니 학부모는 교육 당국을 탓할 게다. 학원비를 내기 어려운 학부모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책이 없다. 말 그대로 정부를 원망하고 분노할 것이다.
정책 취지와 달리, 영어 조기·선행교육이 사라지는 것(유토피아)이 아니라 부모의 빈부 격차가 곧 자녀의 영어 격차로 대물림되는 상황(디스토피아)을 맞는 셈이다. 정책의 디테일 부족은 이렇듯 의도와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다.
당국은 이제라도 수요자 일상에 밀착해 그들의 구체적 욕구를 직시하면서 세밀하게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교육정책에는 특히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다. 학부모 여론이 이 정도라면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역시 실행 여부를 재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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