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어주는 기자] 꾸덕꾸덕한 소스에 졸여진 쌀떡… 빨간 맛, 궁금하면 고고!

입력 2018-01-18 17:44  

'37년 내공' 울산 공주분식


[ 이수빈 기자 ]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은 늘 떡볶이와 함께였습니다. 피아노학원에 가기 전 용돈을 쪼개 사먹던 300원짜리 컵떡볶이. 중학교 시험기간엔 밤늦게까지 공부하기 위해 떡볶이로 배를 채웠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와 수다떨던 곳은 즉석떡볶이집. 쫄면사리와 튀긴 만두는 꼭 넣었죠. 첫 수능을 망치고 엉엉 울고 난 뒤 먹었던 것도 떡볶이였습니다. 대학교 때 팀 프로젝트 과제로 학교에서 밤을 새울 때는 과제보다 야식 떡볶이에 더 집중했던 것 같네요.

얼마 전 울산에 다녀왔습니다. 떡볶이를 먹기 위해. 한 선배가 이 얘길 듣더니 “미쳤냐”고 하더군요. 떡볶이 한 번 먹겠다고 거기까지 내려가냐고요. 그런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울산 남목 전통시장 근처에 있는 ‘공주분식’. 올해로 37년 된 떡볶이집입니다.

울산과 연고가 없는 저는 우연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곳 떡볶이 사진을 보고 홀린 듯 울산행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빨갛고 꾸덕꾸덕한 소스에 졸여진 쌀떡. 딱 이상적인 떡볶이의 ‘자태’였죠. 초행길에 어렵게 찾아가 ‘실물’을 봤습니다. 사진에서처럼 새빨갛고 진한 고추장 소스의 떡볶이였습니다.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께 떡볶이 2인분에 어묵 1인분을 달라고 말씀드리자 나무주걱으로 떡볶이를 슬슬 저은 뒤 접시에 담뿍 담아주셨습니다. 진득한 소스가 떡에 걸쭉하게 묻어났습니다. 빨간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어묵 국물부터 떠서 맛봤습니다. 대파 향이 달큼하게 올라오면서 으슬으슬하던 몸이 풀어지더군요.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느껴졌습니다.

나무 이쑤시개로 떡을 하나 콕 찍어 입에 넣었습니다. 구수한 단맛과 매운맛, 감칠맛이 뒤섞여 저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냈습니다. 말랑하고 쫄깃한 떡은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죠?” 놀라서 묻는 제게 사장님은 “재료를 아끼지 않아서 그래요”라고 하셨습니다. 어묵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만 해도 해조류의 일종인 모자반과 건새우, 대파, 멸치, 밴댕이, 무 등입니다. 모자반과 건새우는 쌀뜨물에 한 번 쪄낸 뒤 쓴다고 하네요. 전날 저녁 끓여낸 육수에 다시 한번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넣고, 두터운 부산 어묵을 넣어 팔팔 끓여냅니다.

떡볶이에도 이 어묵 국물이 들어갑니다. 비법양념은 밀가루처럼 고운 고춧가루와 양미리, 녹두로 쑨 풀로 만듭니다. 여기에 매일 새벽 방앗간에서 쪄 온 쌀떡을 넣고 당근, 양배추 등 채소를 아낌없이 넣어 졸여냅니다.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고심하며 수년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 끝에 요리법을 개발해냈다고 합니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게를 나서는데 사장님이 “먼 데까지 찾아줘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떡볶이로 덥혀진 몸과 마음이 더 따뜻해졌습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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