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리, 손수연, 신정환, 윤용욱, 이영림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84쪽 / 2만9000원
[ 마지혜 기자 ] 예술가는 당대의 권력과 질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에 대한 후원은 예술 생산자 측과 사회 구조가 서로 관계를 맺은 방식 중 하나다. 부나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기관은 예술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정치적으로 보호해줬다. 예술가는 창작의 기회를 확보했고 후원자는 정치적·사회적 영향력과 명예를 높였다.
작가와 예술가, 학자들의 창작이나 연구를 지원하는 후원자 혹은 후원 활동을 ‘메세나’라고 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 문학과 연극,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음악과 미술, 역사 등을 각각 전공한 학자 나주리 손수연 신정환 윤용욱 이영림이 메세나의 역사와 의미를 연구해 《메세나와 상상력》에 담았다.
메세나의 역사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조언자 가이우스 마이케나스는 가난하고 비천해 재능을 펼치지 못하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자신이 예술 애호가였기 때문이지만 이들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려는 의도도 있었다. 생계 걱정을 떨치고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된 두 시인은 로마제국을 찬양하는 시로 보답했다. ‘메세나(Mecenat)’는 마이케나스(Maecenas)의 이름에서 온 말이다.
예술 후원의 주체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교회와 부르주아 등으로 넓어졌다. 교회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고취하기 위해, 상인들은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예술을 후원했다. 군주와 교회의 예술적 취향을 주입받는 데 그쳤던 대중도 17~18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고객이 된다.
저자들은 예술과 후원자 사이를 ‘굴종관계’로 보지 않는다. 17세기 프랑스 문인들은 기꺼이 국가와 손을 잡았다. 군주권의 의도가 그들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게 아님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파리고등법원과 대학, 수도회 등의 억압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문인들은 이를 기회로 보고 권력과 ‘교환관계’를 맺었다.
반면 계몽사상가 루소는 후원을 거부하고 자립의 길을 갔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여러 후원자를 전전한 루소는 후원을 취약하고 모욕적인 것으로 느끼고 후원과 지적 독립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연금을 주겠다는 루이15세의 제안도 거절한 그는 《고백록》에 “연금을 잃었지만 연금이 내게 부과했을 속박도 면했다”고 썼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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