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논문 건수 중심 평가는 부당" 판결, R&D정책 경종 울렸다

입력 2018-01-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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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계획서상의 논문 게재, 특허출원 횟수 등 수치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비를 환수하고 연구사업 참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결과가 불확실한 연구 속성을 무시한 정부의 관료주의적 평가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소송을 당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구현장에서 끊임없이 지적해온 정량적 평가의 문제점을 방치하다가 결국 법원의 이런 판결까지 받게 된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후진적 연구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기정통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을 대행하는 한국연구재단은 고려대 A교수가 수행한 연구과제 최종평가에서 “연구성과가 관련 논문 1건, 몇 건의 특허 실적 등에 그쳐 목표 달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어디에도 질적·정성적 평가를 고민한 흔적이 없다. 더구나 연구재단은 연구자가 소명을 했음에도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실패로 결정됐다”며 연구비 환수, 연구참여 제한 등 페널티 부과를 고집했다.

이런 식이면 누구도 실패 위험이 높은 연구에 도전하거나, 의욕을 담은 연구목표를 제시할 이유가 없다. 적당히 성공으로 평가받을 연구를 수행하면 그만이다. ‘논문을 위한 논문’, ‘특허를 위한 특허’만 쏟아질 뿐이다. 평가 결과로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성공률이 가장 높지만 질적으로는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연구 특성을 무시한 감사원의 획일적 감사도 문제지만, 정부 부처 및 산하 전문관리기관이 경직적 연구평가 방식을 무기 삼아 권력기관처럼 군림해온 게 사실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평가방식을 더 이상 논문 수 등 수치 중심으로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정액 이상의 연구사업을 대상으로 정부가 하는 경제성 등 예비타당성 분석도 문제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부활하면서 기획재정부로부터 그 권한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선진국에 없는 정량적 잣대는 폐지하는 게 답이다. 연구평가 규정을 원점에서 재정비해 실패를 과감히 용인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부처마다 우후죽순 들어선 전문관리기관도 대대적으로 통·폐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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