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선진국의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How’s Life? 2017’이라는 한 권의 보고서를 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이제, 소득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통계보다는 건강·안전·환경 등 ‘삶 지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었다.
문득 20대 후반전을 맞이했던 1996년 겨울이 떠올랐다. 그해, 신문과 뉴스는 모두 같은 내용으로 채워졌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이제는 ‘선진국 진입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으로, 이후 ‘OECD 평균과 비교하여…’라는 말과 함께 우리나라를 ‘선진국’ 기준에 맞춰 비교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OECD 회원국이 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은 선진국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1인당 국민소득(GNI) 2만9000달러라는 수치는 마련됐지만, 삶의 질이 선진국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않다면 지표와 실질 체감 사이의 괴리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은 5% 남짓이다. 하지만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에 속하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다. 초유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로까지 이어진 포항 지진은 4000여 명의 국민을 이재민으로 바꿔놓았고, 이들은 여전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드러난 것은 전국 건물 중 6.5%만이 내진설계가 돼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다수의,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는 그 사회의 감춰진 그늘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건강, 안전, 환경이 위협받는 ‘소수의, 예외적인’ 상황에 놓이고 나서야 마주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OECD 보고서의 결론을 다시 짚어본다. GDP, OECD 평균과 같은 ‘수치’보다 내 삶 속에서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한 ‘일상’. 지금 우리가 바라봐야 할 선진국의 조건도 이런 것들이다.
제윤경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freedebt553@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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