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제소 승산 있다지만… 미국 판정 이행 안해도 그만

입력 2018-01-24 20:00   수정 2018-01-25 06:18

무역전쟁 방아쇠 당긴 미국

제소 실효성에 의문
한국, 11건 제소해 1건만 패소
정부선 "제소가 유효한 수단"

이겨도 미국 이행까지 3년 걸려
기업들 고율관세 계속 물어



[ 김일규/이태훈 기자 ]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기로 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지만 WTO 제소에서 승소하더라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최종 승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승소하더라도 미국이 판정 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지난 23일 “WTO 협정상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려면 급격한 수입 증가, 국내 산업의 심각한 피해, 수입 증가와 심각한 피해 간 인과관계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미국의 이번 세이프가드는 발동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해 WTO에 제소하면 승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을 상대로 11차례 WTO에 제소했다. 이 중 8건은 승소했고, 1건은 패소했다. 2건은 판정 전 소송이 종료됐다.

그러나 승소한 경우에도 WTO 판정까지 2년, 미국의 판정 결과 이행까지 3년이 걸렸고 그 사이 한국 기업들은 고율의 관세를 계속 물었다. 한국이 승소해도 미국이 판정을 따르지 않으면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2013년 1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자 정부는 그해 8월 WTO에 제소했고, 2016년 9월 승소했다. 승소까지 걸린 기간이 3년을 넘었다. 게다가 미국은 판정 이행 시점(2017년 12월26일)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정부는 뒤늦게 이달 22일에야 미국의 판정 불이행에 대해 WTO에 ‘보복관세를 매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WTO 제소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산업부는 이번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와 관련,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이르면 다음주 양자협의를 열자’고 요청했다고 24일 밝혔다. 산업부는 양자협의에서 세이프가드 완화·철회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미국이 보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아예 WTO 탈퇴까지 거론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도 미국은 WTO 체제에 불만을 쏟아냈다.

산업부는 그럼에도 WTO 제소가 유효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승소해서 세이프가드 기간을 1년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우리 기업이 수천억원의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세이프가드는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한 번 승소하면 미국이 다음에 비슷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일규/이태훈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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