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하키와 '호께이'

입력 2018-01-26 18:1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최초의 남북한 단일팀은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등장했다. 선수단의 가장 큰 고민은 남북의 언어 차이였다. 북한은 스매싱을 ‘때려넣기’, 셰이크핸드그립을 ‘마구잡기’라고 했다. 남북 복식조를 한 방에서 지내도록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남북한의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1966년 김일성 교시에 따라 ‘조선말 규범집’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차이가 생겼다. 이른바 ‘주체사상’에 따라 스위치는 ‘전기여닫개’, 드레스는 ‘나리옷’으로 바꿨다.

축구에서는 골키퍼를 문지기, 프리킥을 벌차기,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불렀다. 슛(차넣기), 핸들링(손다치기), 센터포워드(가운데몰이꾼), 드리블(공몰기), 오버헤드킥(머리넘겨차기) 등도 북한은 우리말식 표현을 고안했다.

야구에서 타자는 치기수, 투수는 넣는 사람, 주자는 진격수라고 불렀다. 번트는 살짝치기, 내야수는 안마당지기, 수비수는 자리지기다. 농구 역시 리바운드(튄공잡기), 덩크슛(꽂아넣기), 인터셉트(공빼앗기), 워킹 반칙(걸음어김) 등으로 남북 용어가 다르다.

북한의 외래어 어휘는 러시아를 통해 들여왔다. 그래서 러시아 어형을 주로 쓴다. 트랙터(tractor)는 뜨락또르, 탱크(tank)는 땅크라고 한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종목인 아이스하키도 북한에서는 ‘빙상호께이’라고 부른다. 필드하키를 ‘지상호께이’라고 하는 것 또한 러시아어 영향이다.

북측 선수들을 받아들인 단일팀 감독의 최대 고민도 용어 문제다.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아이스하키는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는 경기다. 체력 소모가 커서 선수 전원이 교체 투입된다. 출전 시간 50초~1분 안팎으로 쉴 새 없이 교체를 반복한다. 3명의 북측 선수가 경기마다 출전하므로 순간적인 의사소통이 잘 안 되면 큰일이다.

남측 선수들이 오펜스 지역으로 퍽을 쳐넣고 쇄도할 때 벤치에선 “그대로 덤프(dump)해”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북측은 “돌진하라”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북측은 패스를 연락, 스틱은 호께이 채, 레프트윙 포지션은 왼쪽 날개, 오프사이드는 공격위반이라고 표현한다.

고대 올림픽에는 언어 장벽이 없었다. 그리스 영토에 수백 개의 도시국가가 있었지만 같은 언어인 헬라어를 썼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뒤에는 세계 각국 선수들이 통·번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분단 70여 년 만에 이젠 남북한 사이에도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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