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

입력 2018-01-28 17:36  

성백현 < 서울가정법원장 slfamily@scourt.go.kr >


2017년에는 어느 해보다 잔혹한 소년 범죄 사건이 많았다.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청원이 올라와 많은 사람이 동의의 뜻을 표시하기도 하고, 국회에서 소년법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되기도 했다.

소년범죄 사건에 대해 일반 법원 형사재판부에서 ‘처벌’을 할 것인지, 가정법원 소년재판부에서 ‘보호처분’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는 개선 가능성이다.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처럼 개선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 결과가 참혹해 유족의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는 범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형사처벌로 소년을 사회와 격리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절도, 단순 폭행 등 대부분 소년 범죄에서는 그런 범죄에 이르게 된 전후 사정과 소년의 환경적 요소를 살펴 보호처분으로 소년의 성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어려서 부모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거나, 주취폭력 버릇이 있는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거나, 지독하게 가난하거나, 분노조절 장애, 혹은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년이 대부분이다. 태어난 지 10년을 좀 넘어선 소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상황이기에 가정을 외면하고, 그러다 보니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절도 등 범행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미 학교와 사회에서 수차례 질책을 받았음에도 다시 잘못을 저질러 법정에서 마주하게 된 소년들을 바라볼 때 한 번쯤 이어령 선생의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라는 시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싶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시루에/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는 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물이 다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헛수고인 줄만 알았는데/저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밑 빠진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고 그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헛수고한 것 같지만 그렇게 계속 물을 붓다 보면 어느덧 쑥 자라 시루를 꽉 채운 콩나물을 볼 수 있듯이 아이들도 그렇게 자란다는 내용이다.

일벌백계의 처벌만으로는 소년을 바꿀 수 없다. 사회가 나서서 소년을 도와주고, 가르치고, 지켜봐 주는 관심이 계속돼야 소년을 바꿀 수 있다. 그래야 (범죄) 소년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성백현 < 서울가정법원장 slfamily@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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