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더 멀리 세계를 보는 문화를 가꾸자

입력 2018-01-28 17:43  

세계 규범과 다른 '갈라파고스 함정' 벗어나
과거 논란 아닌 미래와 세계의 담론 모아야
나라의 운명은 결국 글로벌 경쟁력에 달려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전 총장 >



연세대 총장 재임 때 미국 예일대의 피터 샐로베이 총장 취임식에 초청받아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기대한 대로 예일대 총장 취임식은 유수한 전통과 문화가 돋보였다. 세계 각국에서 350여 개 대학 총장이 참석한 것도 대단했지만, 예일대가 있는 뉴헤이븐시 전체가 혼연일체가 돼 몇 주 동안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총장 취임식이 20년 만에 있는 행사라 의전에 익숙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우리 현실에는 매우 낯설게 들렸다. 320년 동안 겨우(?) 23번째 총장을 배출했으니 취임식 자체가 항상 생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성대한 행사보다 더 큰 충격은 샐로베이 총장의 ‘아프리카 이니셔티브(Africa Initiatives)’로, 아프리카 학생 교육은 물론 학술 연구, 문화 예술, 리더십 강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축하연도 ‘아프리카의 밤’으로 꾸며졌다. 예일과 아프리카? 선뜻 그 관계 설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계의 지성을 이끄는 예일의 미래지향적 통찰력이 아프리카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30여 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최초의 대학을 세운 것도 이와 같은 개척과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는 최근 미래의 자원보고로 떠오르고 있다. 21세기 가장 괄목할 만한 세계 트렌드는 ‘인구의 아프리카화’이며, 올해도 세계 신생아의 31%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필자가 30년 전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당시, 이웃나라 일본이 그 오지에까지 국제협력단(JAICA) 이름으로 많은 청년을 파견한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선진국들은 벌써부터 아프리카까지 대비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아직도 멀리 세계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문화에는 관심이 없다. 대학은 국내 학생 유치에만 급급할 뿐 외국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정원 감축에만 집중할 뿐 한국 대학을 아시아의 교육 중심으로 육성하는 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아프리카까지 바라보는 세계적인 전략은 고사하고 선진국의 성공적인 정책규범도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정부의 교육정책이나 기업정책은 안타깝게도 너무 근시안적이고 내부지향적이다. 유치원 영어교육을 금지하고 쉬운 수능을 지향하며 개인별 능력을 폄하하는 정책을 보라. 획일적인 기업 지배구조 모형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제 감각이 너무 취약하고 세계적 추세와는 동떨어진 폐쇄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정책으로 어떻게 도전적인 세계관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업을 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 식의 소득주도 성장이나 대북정책도 바깥에서 보면 불안하기만 하다.

세계적 규범을 멀리하고 편향적인 이념 논쟁에만 몰입하면 반드시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남미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고립된 이 섬은 진화하지 못한 고유 종(種)이 많아 다윈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한다. 이 섬처럼 외부세계와 유리(遊離)돼 시대적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낙후되는 부작용을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한다. 북한이 전형적인 사례이며, 일본의 휴대폰이 앞선 디지털 기술에도 불구하고 내수시장에만 심취해 국제표준을 도외시하다가 경쟁력을 뺏긴 실패 경험도 이런 현상의 하나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모든 분야에서 미래와 세계를 보는 큰 안목을 길러야 한다.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개인도 세계적 추세와 규범을 지향하고 그 흐름 속에서 목표와 전략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당장 언론부터 국제면을 크게 늘려 세계 정보의 폐쇄성부터 없애야 한다. 사회 또한 소모적인 과거의 논란보다는 미래와 세계에 대한 개방적 담론을 즐겨야 한다. 모든 세대가 더 멀리 세계를 보는 문화를 가꿔, 온 나라가 갈라파고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나라의 운명은 결국 미래의 글로벌 경쟁력에 달려 있다.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전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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