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스타필드와 '공간의 소비'

입력 2018-01-28 17:57  

박성완 생활경제부장 psw@hankyung.com


작년 11월 일본 도쿄 신주쿠엔 ‘쓰타야 북 아파트먼트’라는 곳이 생겼다. 책만 팔지 않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서점으로 유명해진 쓰타야서점이 새롭게 시도한 공간이다. 24시간 운영되는 이곳은 책으로 둘러싸인 휴식 공간을 한 시간당 500엔(약 5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층별로 글램핑 분위기의 개방된 휴식 공간, 공동작업 공간, 여성전용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개인실과 샤워 공간도 있다. ‘책을 축으로 한 편안한 공간’이 이곳의 콘셉트다. 책을 ‘소비(구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책과 휴식이 어우러진 ‘공간을 소비’하도록 한 것이다.

제3의 공간이 뜬다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그의 책 《정겨운 장소에 머물고 싶어라(The Great Good Place)》에서 사람들은 집이라는 ‘제1의 공간’, 직장이라는 ‘제2의 공간’뿐 아니라 이 두 곳을 벗어나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동네서점, 동네카페, 동네이발소 같은 곳이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도 ‘제3의 공간’이 지향점이었다. 요즘은 스타벅스뿐 아니라 곳곳에 생겨난 커피전문점, 동네도서관 등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커피와 책만 소비하는 게 아니다. 나홀로 또는 누군가와 그 공간을 소비하러 간다.

심리학자이자 공간연출 전문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사람들이 집과 직장에서 벗어나 ‘영혼을 마사지받을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불렀다. 올덴버그가 말한 정겨운 장소는 아니더라도 휴식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 여기에는 공간적으로 세심하게 연출된 쇼핑몰이나 테마파크, 공연장, 바 등도 해당한다.

모바일 시대 ‘공간’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네트워크로 연결이 가능해 한 곳에만 앉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공간을 공유하는 비즈니스가 등장한 배경이다. 또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소비자는 휴일에 가족과 즐길 만한 더 많은 장소와 놀거리를 찾는다.

다른 한편에선 온라인몰에 시장을 빼앗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체험과 즐거움을 제공하며 ‘제3의 공간’이 되려 애쓰고 있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별마당도서관처럼 쇼핑몰마다 문화 공간을 조성한다. 이곳에서 각종 공연과 이벤트가 펼쳐진다. 맛집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아이를 위한 미니 테마파크도 들어선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쇼핑몰 개발·운영업체인 웨스트필드는 쇼핑몰 콘텐츠 강화를 위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유명 뮤지컬 프로덕션 스콧샌더스를 인수했다. 신세계가 프리미엄 푸드마켓인 ‘PK마켓’으로 미국에 진출하는 것도 쇼핑몰의 콘텐츠 부족을 해결하려 한 부동산 개발업체 터브먼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그곳에 가는 이유

대형 복합쇼핑몰은 기업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상업적 목적으로 투자한 공간이다. 소비자는 계획적으로 연출된 공간의 편의성과 상징 속에서 지갑을 연다.

지난주 스타필드와 롯데몰 같은 복합쇼핑몰을 대형마트처럼 월 2회 문 닫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여당에서 발의됐다. 소상공인 보호가 이유다. 복합쇼핑몰을 닫는다고 그곳에 ‘놀러 가는’ 소비자의 지갑이 저절로 전통시장에서 열리진 않는다. 시장이나 동네상점도 사람들이 그 장소에 가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박성완 생활경제부장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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