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봄바디어로 피해 없어
반덤핑 관세 300% 안 내도 된다"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이례적 반기
캐나다·영국 정부 연합전선 구축
초강경 대응으로 승리 이끌어내
[ 허란 기자 ]
미국의 무역분쟁 관련 사법부 격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 제기한 캐나다 항공기 제조사 봄바디어의 덤핑 혐의는 ‘무죄’라고 지난 26일 밝혔다. 지난해 봄바디어에 반(反)덤핑 ·상계관세 300% 부과 결정을 내린 미 상무부의 예비판정을 뒤집고 캐나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월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11월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권고한 ITC가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례적 판정 뒤집기
ITC는 봄바디어가 항공기 C시리즈를 미국 항공사에 원가 이하로 판매한 것이 보잉에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4 대 0 만장일치 판결이었다. ITC가 상무부 조치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미 CNBC방송은 “깜짝 놀랄 만한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결정에 대한 이유는 오는 3월쯤에나 나올 전망이다. ITC의 만장일치 결정은 두 항공기 제조사 간 무역분쟁이 양국 무역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캐나다산 목재와 미국산 우유에 대한 관세 부과 문제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요구로 양국은 대립하고 있다. 이번 ITC 결정에 개정 협상 중인 NAFTA의 19장(반덤핑 및 상계관세 분쟁 해결 절차) 유지 여부도 달렸다는 분석이 많았다.
두 회사의 갈등은 2016년 4월 미 항공사 델타가 봄바디어의 C시리즈 항공기 75대를 구매하기로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경쟁사인 보잉은 ITC에 봄바디어를 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봄바디어가 캐나다 정부의 불법 보조금을 지원받아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항공기를 미국에 팔아 자사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미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관리청(ITA)은 지난해 9월26일 예비판정에서 봄바디어의 덤핑 혐의를 인정하고, 신형 C시리즈 항공기에 220%에 이르는 상계관세 부과를 잠정 결정했다. 지난달 20일 미 상무부도 봄바디어에 292% 관세(상계관세 212.39%, 반덤핑관세 79.82%)를 부과하기로 했다.
봄바디어는 ITC가 상무부의 판정을 뒤집는 결정을 내리자 “혁신과 경쟁, 법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반면 보잉은 “봄바디어가 미국 우주항공산업에 피해를 끼쳤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보잉이 항소할 여지도 있다.
봄바디어가 고급 여객기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보잉의 맥스7 기종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봄바디어는 100~150인용 항공기 주문이 향후 20년간 6000대가량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캐나다-영국 정부의 승리
이번 ITC 만장일치 판정을 놓고 “캐나다와 영국 정부의 승리”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가했다. 캐나다 정부는 물론 북아일랜드에 봄바디어 공장을 두고 있는 영국 정부가 나서 전방위 로비를 펼쳤기 때문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해 9월 미 상무부의 반덤핑 관세 결정이 나오자 즉각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고 보잉에 대한 보이콧을 시사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0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상무부 결정에 강하게 항의했다. 지난해 12월엔 보잉의 슈퍼호넷 전투기 18대 구매 계획을 철회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ITC가 봄바디어의 손을 들어주자 메이 총리는 “영국 산업에 좋은 소식”이라고 환영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은 “이번 결정이 양국 중산층의 일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실리아 맘스트룀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북아일랜드 봄바디어 공장 근로자 4000명을 구제하는 어려운 승리”라고 말했다.
◆“이번엔 독립성 지킨 ITC”
전문가들은 ITC의 이번 결정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차드 보운 선임연구원은 “ITC는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 건에서 실망스러운 결정을 내렸지만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 수사에 굴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이 불공정한 수입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며 봄바디어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 조치에 힘을 보태왔다. 그는 이번 ITC 결정이 나오자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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