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합의한 부분은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남한 공연이다. 실무접촉을 위한 대표단의 구성도 파격적이다. 남측 대표로 ‘코리안 심포니’ 대표들을, 북측은 무대감독과 관현악단장을 포함했다. 관현악 운동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는 전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원래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한 일종의 사회적 행동이었다. 전국에 160여 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10만여 명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같은 세계적 음악인을 배출하는 예술적 성과도 거뒀다.
음악은 상대적으로 탈(脫)정치적이고 탈이념적인 예술이다. 관현악은 대규모 인원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는 협력 작업이다. 남북교류나 엘 시스테마와 같이 정치적 사회적 통합의 목표를 위해서는 안성맞춤인 장르다. 그러나 과연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수차례 남북 음악 교류를 해왔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수많은 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는 최악의 상황이다.
강원 평창의 산골 학교인 계촌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전교생으로 구성된 ‘별빛오케스트라’가 활동 중이다. 이 오케스트라는 인구가 급감하고 희망을 잃어가는 산골 학교를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갸륵한 노력을 알게 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를 함께 지원하고 있다. 지난주에 악기 전달식도 열었다. 전교생이라 해도 초·중학교 각 30여 명의 단출한 단원들이다. 매년 여름 음악 축제도 열어 연주회를 하는데, 해가 갈수록 연주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예술을 통해 소외 지역을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려는 사회적 목표를 가졌다. 외지 사람도 유입돼 인구와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당황스럽다. 오히려 재학생마저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 조금씩 줄고 있다고 한다.
그럼 이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학습 집중력 향상은 물론이고 대단한 자부심과 자존감으로 일상생활이 달려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학생과 학부모, 마을이 행복해졌다. 남북 관현악단의 교류는 한반도인의 동결된 마음을 녹일 것이다.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은 최소한 정서적 위안을 느낄 것이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정신적 풍요와 창의성을 선물하는 것은 확실하다. 음악은 인생을 바꾼다.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rkim@karts.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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