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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정세랑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요즘은 웬만큼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고서야 결혼이든 다른 무엇이든 엄두를 못 내지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아니 인생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국어사전 정의에 따르면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는 뜻이다. 보통은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를 의미한다. 우리 민족에게 ‘평범’한 건 미덕이 아니었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 부모들은 열심히 교육시켜 자식이 ‘입신양명’하길 바랐고, 우리 때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면모가 보이면 ‘비범’한 아이라며 영재 취급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평범하게 살다 만 갈 수 있겠나?’ 여느 부모라면 한 번쯤 자신의 아이에게 바랐을 생각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일자리가 없고 임금은 줄어들고 계층 간 사다리는 더욱 높아졌다.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밀레니엄 세대, 즉 요즘 젊은이들이 될 것이다. 모험도 도전도 언감생심. 중간만 가기 위해 이 사회의 규칙과 상식에 지나치게 순종하는 세대. 평범함이 꿈인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주빌리은행에서 일하면서 “내 꿈은 다름 아닌 아이들에게 마음 편히 피자 한 판 사주고 영화 보러 가는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던 한 다중채무자의 말이 떠오른다. 평범함이 꿈인 것은 비단 젊은 세대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치세자 치상자야 도야자 도상자야(治世者 治常者也 道也者 道常者也: 정치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생활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요, 도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행동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다)라는 한비자의 말을 돌이켜본다. 평범함이 꿈이 되지 않는 사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좇을 수 있도록 국가가 기본적인 평범함을 보장해주는 사회. 내가 하는 정치가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커다란 그림보다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라는 기본을 잊어선 안 된다고 다짐한다.
제윤경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freedebt553@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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