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신촌·가로수길 등 '썰렁'
상가 '억대 권리금'도 사라져
작년 말 문재인 대통령 방중후 '반짝'
대로변 대형 점포도 공실 급증
[ 김형규 기자 ]
31일 서울 명동 상권의 사잇길로 불리는 명동6길. 오후 시간임에도 거리를 걷는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동인구로 가득한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 앞 대로변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은 건물이 그렇지 않은 건물보다 더 많았다. 같은 자리에서 두 시간여를 지켜봤지만 상가에 들어서는 관광객은 두 팀에 불과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줄면서 명동, 이대·신촌, 가로수길 등 서울 주요 상권의 상가 공실이 급증하고 있다. 유커 공백이 1년 이상 장기화되자 상인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가게를 접고 있어서다. 엔저 현상으로 일본인 관광객 수도 줄어 호텔, 게스트하우스 등이 문을 닫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명동 매물 42% 증가
상가중개 전문업체인 점포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명동 상권에서 새로 매물로 등록된 점포는 149실이다. 2016년(86실)에 비해 42%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거래 건수는 64건에서 25건으로 61% 줄었다. 홍대·이대·신촌 등에서 지난해 새 임차인을 찾기 위해 내놓은 점포는 143실이었다. 2016년(112실)에 비해 소폭 늘었다. 거래 건수는 85건에서 58건으로 감소했다. 가로수길·압구정로데오의 신규 등록 점포는 같은 기간 68건에서 120건으로 늘었고, 거래는 45건에서 27건으로 줄었다. 염정오 점포라인 상권분석사는 “이전과 달리 권리금이 없거나 미미한 매물이 많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 매물 속출
명동 골목 점포의 공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4분기부터다. 1년 가까이 손해를 버티다 못한 골목길 소형 점포들이 장사를 접으면서다. 지난해 10월엔 월 매출 3억원이 넘는 66㎡ 규모 화장품 가게가 월 1억원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게를 내놨다. 기업 플래그숍 등이 입주한 메인도로의 대형 점포는 손실을 입더라도 버티고 있지만 골목 상권은 죽어가고 있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명동 중개업소엔 억대 권리금이 붙은 게스트하우스도 매물로 올라와 있다. 2년 전만 해도 만실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명동 D공인 관계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게스트하우스 매물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매물이 나오고 있다”며 “165~330㎡ 등 다양한 크기의 10실 이상 규모 게스트하우스가 통째로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명동 K공인 관계자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고 하지만 씀씀이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대 상권선 대로변 점포도 공실
이날 이화여대 인근 공용주차장엔 주차된 차량이 단 한 대도 없었다. 2년 전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릴 땐 40석 규모의 관광버스로 항상 만석이었으나 지금은 텅 비어 있을 때가 많다. 이대역 상권은 3~4년 전부터 20대 소비인구가 홍대로 빠져나간 뒤 유커에 의존했다. 유커 감소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점포를 정리하는 곳이 늘어나는 이유다. 한 상인은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뒤 1주일 정도 관광객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적막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는 대로변 안쪽 골목의 소형 점포(전용면적 10㎡ 안팎) 공실이 다수였다. 이들 점포엔 3000만~4000만원가량 권리금이 붙어 있었으나 지금은 권리금이 없다. 4분기부터는 메인도로변 대형 점포에도 하나둘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장품가게, 옷가게, 작은 음식점 등이 먼저 문을 닫은 데 이어 대형 점포들이 뒤따르는 모양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했는데 이렇게 상권이 안 좋아진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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