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의 '펀드판매 혁신' 실험

입력 2018-01-31 17:39   수정 2018-02-01 09:58

"투자자 기다리지 않고 버스 타고 어디든 찾아가겠다"

3월부터 '메리츠 버스' 투어

"주식에 투자하라" 캠페인
증권사·은행 거치지 않고 버스에서 펀드 직접 팔아
판매수수료 0.1% 불과

메리츠 주니어·시니어 등 세 가지 상품만 판매



[ 나수지 기자 ] ‘주식투자 전도사’로 불리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이 버스를 타고 펀드 홍보와 판매에 나선다. 오는 3월부터 관광버스로 전국을 누비며 ‘주식에 투자하라’는 캠페인을 한다. ‘우리가족 경제독립’이 슬로건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주식투자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메리츠 버스’에서는 펀드도 판다. 증권사와 은행 등 판매회사를 통하지 않고 메리츠자산운용이 투자자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한다. 판매수수료는 기존 판매사의 10분의 1(0.1%)로 확 줄이기로 했다. 수수료를 줄이면 그만큼 고객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투자자 있는 곳 어디든 갈 것”

메리츠자산운용은 1일부터 홈페이지(www.meritzam.com)를 통해 메리츠 버스투어 신청을 받는다. 투자자들이 “우리 지역에 와 달라”는 글을 남기면 신청이 많은 곳 가운데 버스투어 행선지를 정한다. 버스투어는 3월 시작한다. 존 리 사장은 “여름에는 해수욕장, 겨울에는 스키장까지 투자자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갈 것”이라며 “주식투자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존 리 사장은 서울 여의도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부터 미국 투자회사인 스커더스티븐스앤드클라크에서 코리아펀드를 15년간 운용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도이치투신운용과 라자드자산운용을 거쳐 2014년부터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을 맡고 있다. 운용업계의 대표적인 스타 펀드매니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버스투어를 자처한 건 개인들이 주식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존 리 사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교육비와 교통비 등의 지출을 줄여 주식에 투자하는 게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액과외 등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에는 강하게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획일적인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이라며 “점수를 조금이라도 많이 받겠다고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교육비를 쓰는 일은 심각한 국가적 낭비”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도 성인들이 장기투자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생겨났다고 진단했다. 존 리 사장은 “저출산과 노인빈곤 등은 청년들이 모아둔 돈이 부족하고, 노년층이 젊었을 때 노후를 대비하지 못해 생긴 문제”라며 “주식은 고위험 자산이지만 장기투자하면 그만큼 높은 수익률로 자산을 불려준다”고 힘줘 말했다.


메리츠 펀드 직접판매

메리츠자산운용의 버스투어는 운용사가 펀드를 고객에게 직접판매하는 ‘판매구조 혁신 실험’이라는 의미도 있다. 지금은 운용사가 펀드를 내놓으면 증권사나 은행이 파는 간접판매 구조가 일반적이다. 판매사는 펀드를 팔 때 보통 선취수수료로 투자금의 0.6~0.9%가량을 뗀다. 판매보수로 매년 0.4~0.6%를 가져간다. 운용사는 연 0.5% 안팎의 운용보수를 받는다.

과거에도 운용사가 고객에게 펀드를 ‘직판’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강방천 회장이 이끄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2008년 운용사를 설립하면서 업계에서 처음으로 펀드 직판을 추진했다. 하지만 시장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온라인으로만 가입할 수 있고 판매수수료도 기존 판매사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셋플러스는 결국 2011년부터 펀드 간접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펀드를 직접 파는 대신 판매수수료를 확 낮출 계획이다. 기존 판매사의 10분의 1 수준인 0.1%만 받는다. 버스투어를 통해 강연을 들은 고객 가운데 펀드 투자를 원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홈페이지와 앱(응용프로그램)으로 가입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존 리 사장은 “수수료가 줄어든 만큼 고객이 가져가는 이익이 늘 것”이라며 “강연을 듣고 메리츠의 투자철학에 공감하는 투자자들이 상품에 가입할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우려도 적다”고 설명했다.

기존 펀드 판매사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세 가지 상품만 직접 팔기로 했다. 지난해 6월 선보인 ‘메리츠 주니어’, 이달 나올 ‘메리츠 시니어’, 상반기 판매할 ‘메리츠 샐러리맨’ 펀드다. 메리츠 주니어 펀드는 20세 이하만 가입할 수 있다. 투자금을 모두 주식에 넣어 공격적으로 운용한다. 20대 신입사원부터 50대 임원까지 직장인이 타깃인 ‘메리츠 샐러리맨’ 펀드는 주식비중을 80%로 줄이고 채권을 20% 담는다. 안정성이 중요한 ‘메리츠 시니어’ 펀드는 채권 비중을 80%까지 늘린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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