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T… 검찰 대신 기업수사 칼 빼든 경찰

입력 2018-01-31 18:38   수정 2018-02-01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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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적폐수사 매달리는 사이에 잇단 압수수색… "수사권 조정 의식한 행보"

삼성물산·대한항공·대림이어 KT 본사·광화문지사 압수수색
불법 정치자금 기부 첩보 입수

공개수사에도 불구 진척 더뎌 "검찰 의식한 무리한 수사" 우려도



[ 이현진 기자 ] 전·현직 임직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31일 KT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은 삼성물산 대한항공 대림산업 홈앤쇼핑 등에 칼날을 세우며 기업 수사의 최전선에서 맹활약 중이다. 이런 종류의 특수수사가 전공인 검찰이 적폐 수사에 매달리는 사이 경찰이 기업 압박의 선봉장으로 나선 모양새다. 검·경 수사권 독립 논의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무리한 행보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경찰의 잇단 기업 압수수색 ‘이례적’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40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 KT 본사와 서울 광화문지사 사무실에 수사관 20여 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불법 정치자금 기부 혐의와 관련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임원들의 개인 사무실도 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홍보·대관(對官) 담당 임원 등 40여 명이 작년 말 일부 국회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했다는 첩보가 이날 압수수색의 배경이다.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산 뒤 현금화하는 ‘상품권깡’ 수법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이렇게 조성한 자금을 황창규 KT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여부, 통신 관련 예산 배정과 입법 등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주로 기부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 자료를 분석한 뒤 KT 임원 등 관계자를 소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사력 입증 … 檢으로부터 독립이 목표”

경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찰청 특수수사과, 지능범죄수사대 등을 동원해 기업 관련 수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작년 7월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택공사 비리 혐의로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했다. 8월과 10월에는 같은 혐의로 삼성물산, 11월에는 전·현직 임직원의 배임수재 혐의로 대림산업에 들이닥쳤다. 연말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강단 있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이 적폐 수사에 매달리는 동안 경찰이 기업 수사의 주력부대로 등장한 모양새다.

횡령·배임 같은 지능형 범죄, 굵직한 기업 수사는 검찰 특수부의 ‘전문 영역’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만큼 경찰의 이례적 행보에 더 시선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의식한 포석으로 진단한다. 첩보력과 기획수사력을 입증해 굵직한 사건에서도 검찰에 밀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는 것이 목표라는 시각이다.

과감한 압수수색은 경찰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날의 칼이라는 평가가 많다. 공개수사에 착수했음에도 아직 대부분 기업 사건에서 영장 청구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속도가 더딘 게 현실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이슈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결국 수사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얘기가 지난해 경찰 내부에서 많았다”며 “범죄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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