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채용비리의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면서 현재 실시중인 '블라인드 채용'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무(無)스펙·실무형 채용이 그나마 존재하던 객관적 기준마저 없애면서 '불공정 채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진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은 모두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모두 1차 실무 면접과 2차 임원 면접까지 지원자 인적사항이나 학력 등을 면접관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면접관에게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와 학과만 제공하며, 이름과 나이도 밝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이름을 거르고 채용 청탁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의미다.
하나은행의 경우 서류전형에서 영어 점수나 자격증 보유 여부도 작성하지 않는다. 지원자들 간에도 서로 이름을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 역시 임원 면접에서도 수험번호와 자기소개서 외 이름이나 나이 등 지원자들의 정보를 면접관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고위 임원진의 개입이 있을 경우 '블라인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업계 안팎의 의견이다.
국민은행은 서류와 1차 면접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자를 2차 임원 면접에서 최고 점수를 주며 합격시켰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경영지원그룹 부행장과 인력지원부 직원이 최고 등급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인사·채용 시스템과 관련된 부서에 있는 만큼 지원자들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다.
하나은행도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의 임원 면접 점수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이라 하더라도 경영지원팀이나 인사팀 임원은 지원자의 정보를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위치"라며 "이들을 채용 면접에서 배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팀 전체가 공유하던 지원자 정보를 이제는 담당자만 갖고 있는 등 개인 정보 관리에 힘쓰고 있다"며 "그러나 고위층에서 정보를 달라는 요청이 오면 거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지원자들에게 공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블라인드 시스템이 오히려 차별을 가져온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원자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지표는 평가 요소에서 지우고 면접관들이 자의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면접 점수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번 금감원 조사에서도 면접 점수를 과도하게 주거나 임의 조정한 경우가 여러 건 드러났다. 채용 과정을 내부 권력과 독립적으로 운영하지 않는 이상 공정한 채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번 금감원 조사에 앞서 채용 비리에 연루되며 이광구 전 행장이 물러난 우리은행은 2018년 공채에서부터 행장의 결정권을 배제하고 공채 과정을 '아웃소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100% 외부에 맡기지는 않겠지만 채용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 아웃소싱할 예정"이라며 "면접 과정이나 채용 프로세스의 적정성도 외부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고 최종 면접에도 외부 전문가가 참석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2월 중 새로운 채용 프로세스를 밝히고 공채를 시작할 예정이다
김아름·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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