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길로비치·리 로스 지음 / 이경식 옮김
한국경제신문 / 426쪽 / 1만6000원
토마스 길로비치·리 로스 교수
사회심리학 연구 성과 토대로
지혜로운 결정 돕는 방법 제시
다른 운전자 느리거나 빠를 때
자신만 정상속도라고 착각
선한 행동 늘리려면 경로 쉽게
정보 왜곡하는 필터 걷어내야
[ 서화동 기자 ]
“혹시 여러분은 운전을 하면서 당신보다 느린 사람은 멍청이이고, 빠른 사람은 미친 놈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그래미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미국 코미디언 조지 칼린(1937~2008)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이런 질문에 대부분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보다 느리거나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느리거나 빠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견해나 인식에 담긴 주관과 편견, 선입견, 경험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리 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이런 현상을 ‘소박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세상을 주관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스스로 여기는 발상인데, 사실은 착각이다.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로스 교수와 토마스 길로비치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가 사회심리학의 여러 가지 연구 성과를 토대로 지혜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들에 따르면 사회심리학은 평균적인 사람의 생각, 감정, 선택, 행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학문이다. 이를 통해 갖게 된 인간 행동에 관한 통찰이 삶을 지혜롭게 한다는 것. 이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심리적으로 지혜로워야 한다”고 주창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짜여 있다. 1부에서는 사회심리학을 토대로 인간행동의 일반적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의 다섯 가지 기둥을 소개한다. 그 기둥들은 객관성이라는 환상을 초월하기, 상황이 발휘하는 힘을 이해하기, 지혜의 바탕이 되는 언어, 행동이 정신을 지배하는 원리 이해하기, 시야의 열쇠구멍 넓히기다. 소박실재론은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믿는 환상의 하나다. 소박실재론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견해나 행동에 동의하는 정도마저 자기도 모르게 과장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견해나 취향이 더 보편적이라고 믿도록 한다. 저자들은 이를 ‘허위합의 효과’라고 명명했다.
저자들은 어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 노력을 들이는 것보다 그런 행동을 실제로 하기 쉽게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선한 행동을 늘리려면 그 경로를 쉽게 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줄이려면 그 경로를 어렵게 하면 된다는 것.
특정 사건을 사례로 들어 보편적인 원리를 입증하려는 사람은 ‘체리피킹(cherry picking)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나 자료만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데서 생기는 오류다. 특히 터널 안에서 터널 출구를 바라볼 때처럼 좁아진 ‘터널 시야’의 상황에서 체리피킹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그 후 이라크 재건 사업은 체리피킹의 대표적 사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은 같은 정보를 놓고도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어떤 정보는 환하게 비추고 어떤 정보는 그림자 속에 숨긴다. 따라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려면 자기 눈을 가리고 정보를 왜곡하는 필터와 렌즈를 바꾸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2부에서는 사람들이 개인적·집단적 차원에서 부딪히는 중요 관심사인 행복 추구, 갈등과 분쟁 극복, 특정 계층에 불리한 교육환경과 학습부진 문제, 기후변화의 거대한 재앙 등을 어떻게 다루고 대처해야 할지 설명한다. 관심이 가는 건 심리학의 지혜를 활용한 갈등과 분쟁 극복이다. 갈등의 당사자들은 협상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상대방이 이기심이나 이념 때문에 눈이 멀어 현실을 객관적·이성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지 부조화와 자기 합리화, 반사적 평가절하 등 심리적 장애요인도 협상 타결을 방해한다.
저자들은 이 책이 제시하는 심리학의 지혜를 가장 잘 활용한 사례로 잔인한 인종차별 체제에서 흑인과 백인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체제로 변화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든다. 1994년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폭압적 인종차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럭비 국가대표팀 스프링복스를 포용하기로 했다. 소수인 백인들이 느끼는 공포를 달래기 위해서다.
이듬해에는 럭비월드컵을 유치해 ‘하나의 팀, 하나의 국가’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거의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스프링복스가 연전연승을 이어가자 처음엔 시큰둥하던 흑인들도 응원에 가세했다. 결승전에선 남아공 원주민 줄루족의 노동가요 ‘쇼숄로자’를 모두가 한목소리로 부르는 가운데 만델라가 입장했고, 스프링복스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만델라는 스프링복스를 통해 소박실재론의 한계를 훌훌 털어내고 자기 앞에 놓인 시련들을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갈등을 가장 지혜롭게 해결했다고 저자들은 평가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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