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연 펀치볼산채마을 대표
13년 전 아는 사람 하나없는 양구에 정착
2013년 홈쇼핑서 대박…2016년엔 미국 수출
9만9000㎡ 농장 운영하며 영농조합도 이끌어
[ 홍선표 기자 ]
귀농인이 농촌에서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기란 흔치 않다. 세세한 지역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에서 처음부터 좋은 땅을 구하기도 힘들다. 어렵게 땅과 농기계를 구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초기 2~3년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자를 내는 경우가 많다.
조하연 펀치볼산채마을 대표(58)는 귀농 실패의 조건을 여럿 떠안은 채 2005년 강원 양구군 해안면으로 귀농했다. 충남 부여군이 고향인 그에게 양구군은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타향이었다. 가족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중국 사업에서 실패한 그는 홀로 양구군으로 향했다.
양구군에 정착한 지 13년이 지난 현재, 그는 연 15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영농조합법인을 이끌고 있다. 약 9900㎡(3000평) 규모로 시작한 그의 개인 농장도 그 사이 9만9000여㎡(3만 평)로 10배나 커졌다. 비결이 뭘까.
양구군은 최근 시래기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무의 줄기(무청)를 겨우내 말렸다가 푹 삶아낸 시래기는 무를 키우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 이 시래기가 양구군 특산품이 된 건 해안면에서 나오는 ‘펀치볼 시래기’ 명성 덕분이다. 펀치볼 시래기가 소비자 입소문을 타면서 시래기 주산지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펀치볼은 해안면 별명이다. 6·25전쟁 당시 외국 종군기자가 해안면 지형이 화채 그릇(punch bowl)을 닮았다고 적으면서 불려졌다.
펀치볼 시래기가 인기를 얻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이 바로 조 대표다. 해안면에서 작년 11월 기준 전체 농가의 약 80%인 250가구가 시래기 농사를 짓고 있다. 조 대표는 “2013년 홈쇼핑을 통해 판매를 시작한 게 매출 확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처음 나갈 때만 해도 시래기가 홈쇼핑에서 팔릴까 나조차도 의심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가 귀농한 2005년만 해도 해안면은 시래기보다는 감자와 일반 무를 주로 키우던 곳이었다. 시래기는 그저 무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다. 조 대표도 귀농 뒤 2년간은 감자와 일반 무를 키웠다. 그가 시래기 농사에 뛰어든 건 농사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인 2007년이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그에게 시래기는 토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8월 초까지 감자 농사를 지은 뒤 8월 중순에 무를 심어 10월 말 시래기만 수확하면 이모작이 가능했다.
민간인통제구역인 해안면의 겨울은 11월부터 시작된다. 남부 지역에선 한창 무를 수확하는 11월이지만 해안면에선 그때까지 무를 밭에 놔두면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이모작을 위해선 무의 몸통은 포기하고 시래기만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
시래기 농사로 수익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 대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07년 인근 농민 4명과 함께 영농조합법인 펀치볼산채마을을 설립하고 대표를 맡았다. 농사를 잘 몰랐던 그가 대표를 맡은 건 그의 사업 관련 지식과 경험 때문이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그는 2000년대 초반 수년간 중국 칭다오에서 봉제 인형 공장을 운영했다.
영농법인의 시래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건 홈쇼핑을 시작한 2013년부터다. 그전에도 시래기를 수도권 학교 급식에 납품했지만 유통업체를 통하는 방식이어서 수익이 크지 않았다.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소비자와 직거래할 수 있는 판로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홈쇼핑 데뷔는 성공이었다. 방송을 위해 준비한 6500세트가 모두 팔렸다. 세트당 가격이 4만원가량이었으니 방송 한 번으로 2억6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조 대표는 “말린 시래기를 삶아서 다시 씻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하고 소포장을 통해 가족 구성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한 게 인기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엔 두 차례에 걸쳐 미국에 3t 물량의 시래기를 수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그가 귀농 준비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우선 귀농하기 전 해당 지역에 내려가 생활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농가의 일을 도우면서 진짜 농촌에서 산다는 게 뭔지 알고 준비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믿음직한 멘토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귀농을 준비할 때뿐만 아니라 내려와서 농사지을 때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전 이걸 모른 채 귀농했다가 5년 넘게 고생했어요.”
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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