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규제개혁 가로막는 5대 함정들

입력 2018-02-04 17:58  

"규제수 줄이기 매몰·기득권 보호
복잡한 행정절차·환경 등 도그마
정쟁에 따른 '입법 함정' 등 없애야"

유병규 < 전 산업연구원장 >



국내 경제 활력을 높이는 핵심방안으로 규제개혁이 또다시 강조되고 있다. 아쉽게도 늘 거창한 구호에 비해 성과가 가장 미흡한 분야 중 하나가 규제개혁이다. 이러다 보니 이를 강조하는 수식어들만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규제개선이 개혁과 혁신에서 이제 혁명으로 바뀌고 있다. 이번 정부의 규제혁명 의지가 성과를 거두려면 추진과정에서 길목마다 가로막고 있는 다섯 가지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선 총량규제 축소 함정을 피해야 한다. 명확한 규제 대상과 목표를 정하지 않고 단지 규제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부처별 분야별 규제철폐수 목표 설정 등이 이의 대표적 사례다. 이런 경우 주로 실효성이 없는 사문화된 규제들만 정리돼 규제수가 아무리 줄어도 현장에서는 그 효과를 느낄 수 없게 된다. 규제수가 아니라 신규 창업이나 투자를 위한 현장대기형 규제개혁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 규제개혁 대상과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기득권층 지대추구 함정을 통과해야 한다. 신사업 투자 등을 위한 규제철폐는 기존 규제를 통해 실익을 얻고 있는 기득권층 이해와 상충되기 마련이다. 의료투자, 원격진료, 공유경제, 금융, 물류유통과 같은 유망 서비스업 분야에서 기존업계의 반대논리와 여론조성 등에 밀리게 되면 신규투자 길은 막혀버린다. 기득권층 함정을 뛰어넘으려면 정부 차원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주도적 추진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급변해 기존 산업체계가 바뀌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 시기는 더욱 그렇다. 1980년대 통신혁명도 이렇게 성사됐다. 지금은 당연한 전자식 전화교환방식은 기존 기계식 업체들에 주무부처까지 가세한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고 과감히 교체한 결과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난마처럼 얽힌 복합적 행정절차도 극복하기 힘든 규제개혁 함정이다. 창업이나 투자 등을 하려면 중앙과 지방정부, 그리고 각 부처 간 규제가 다르거나 중복되고 선후관계가 불명확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려 결국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함정의 특징이다. 4차 산업혁명기는 빛의 속도로 신기술 기반 신사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다. 중국은 창업과 행정절차 규제를 철폐하고 원스톱 지원체계를 마련해 세계적 창업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네 번째로 뛰어넘어야 하는 함정이 정치적 이념에 기반을 둔 독단적 신념(dogma) 함정이다. 규제개혁이 특정 기업이나 계층에만 이득을 준다는 일부계층 특혜론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규제를 해소해 의료법인 투자를 허가하면 이를 통해 개발이익이 발생하고 의료혜택의 차별화가 심화된다는 반대논리는 기업투자와 의료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다. 국내 여건이 어려워지면 기업투자는 해외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그 누구도 언급하기 어려운 규제성역도 존재한다. 기술발전과 세계적 경제활동을 도외시한 과도하고 경직적인 안전, 환경, 수도권 규제가 그것들이다.

산업발전과 일자리 증대를 위한 규제개혁 시 마지막 넘어야 할 것이 국회에서의 입법 함정이다. 경제적 실익을 고려하지 않는 지나친 정쟁이 규제개혁 의지를 무력화한다. 규제개혁 함정을 슬기롭게 피해가려면 행정부와 입법부에 일원화된 규제개혁 창구를 갖춰 유기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 단일화된 범부처 규제개혁 기구를 만들어 지원대상을 현장대기 창업과 투자계획 중심으로 선정하고, 여야로 구성된 규제개혁입법기구와 협의해 규제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여야가 뒤바뀐 지금이야말로 규제개혁 적기다. 창업과 신규투자를 위한 개혁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과거와 현재 여당 모두 규제개혁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규제개혁만은 협치를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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