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르르 무너진 특검의 '무리한 기소'
대통령에게 승계 관련 청탁했다는 증거 없어
승마 용역대금만 뇌물…뇌물액 90% 불인정
법정형 가장 높은 재산국외도피도 전부 무죄
[ 고윤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임직원을 향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뭉뚝한 공소 사실을 법원이 날카로운 칼날로 도려낸 듯한 판결이었다.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의 본질이 특검의 주장처럼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아니라 권력의 겁박에 의한 이른바 ‘요구형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승계작업은 없다”
법원은 특검의 공소 핵심 내용을 대부분 부정했다.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한 ‘승계작업’ 자체가 없었다고 하면서 공소장을 지탱하던 큰 줄기가 끊어져버렸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후계자 승계를 위한 여러 현안이 삼성에 있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식의 승계작업 주장을 지금까지 고수해왔다. 이는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장이 특검에 제발로 찾아가 만들어준 프레임으로 지난해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별 현안들의 진행 자체가 공소사실과 같은 승계작업을 위해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개별 현안에는 이 부회장의 승계뿐 아니라 다양한 효과가 있어 ‘부분을 전체로’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검이 내세운 승계작업이 명확하게 정의되거나 관련 증거에 의해 인정된 것이 아니라고 봤다. 또 대통령에게 관련 청탁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가 인정한 뇌물죄 유죄 부분은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원과 최씨 측에 마필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이다. 1심이 인정한 승마지원 관련 73억원의 반토막 수준이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도 1심과 달리 무죄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특검이 뇌물액으로 기소한 433억원의 10% 미만이다. 유죄 부분마저 재판부는 삼성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요구에 못 이겨 지원한 것이라고 봤다. 삼성에 법적 무죄뿐 아니라 도덕적 무죄까지 선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산국외도피죄’까지 줄줄이 무죄
재판부의 날카로운 칼날은 그 외에도 공소장 곳곳을 세밀하게 도려냈다. 1심은 용역대금 전액을 뭉뚱그려 뇌물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마필, 마필운송차량, 선수단 차량에 대한 소유권을 세부적으로 판단했다. 소유권까지 넘긴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입액’을 뇌물로 볼 수 없고 ‘무상으로 사용한 이익액’을 뇌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재산국외도피죄에 대한 판단도 원심과 달랐다. 재산국외도피죄는 특검이 징역 12년을 구형하며 높은 형량의 근거로 내세웠던 혐의다. 특검은 삼성이 최씨에게 돈을 주기 위해 코어스포츠에 용역대금 명목이나 삼성전자 승마단 소속 선수들 지원금인 것처럼 허위 지급신청서를 제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특검이 재산국외도피에 대해 법리적 판단 자체를 잘못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재판부는 “재산국외도피죄는 범죄행위임을 알고 있는 자가 (추후) 자신이 임의로 (재산을) 사용하기 위해 은밀히 해외로 빼돌리는 것”이라며 “뇌물공여 의사로 보낸 돈이지 재산국외도피용이 아니다”고 법리 설명을 곁들였다.
법조계에서는 법리 면에서 취약했던 특검의 무리한 저인망식 기소가 법원에서 정면으로 부정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특검이 뭉뚱그려 기소한 부분에 재판부가 엄격한 법리를 적용한 것”이라며 “특검 공소장을 이루는 기초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사실상 완전 무죄 판단을 내린 것과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특검은 이날 항소심에 대해 “법원에서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법원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대법원에) 상고해 철저히 다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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