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외소득 '원천지 과세제도'로 바꿔야

입력 2018-02-0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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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세체계 '원천지주의' 택한 미국처럼
국외소득 국내 송금엔 비과세해
국내투자·일자리 늘리게 도와야"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



최근 미국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면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큰 폭의 법인세율 인하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이 ‘글로벌 과세제도’를 ‘원천지 과세제도’로 전환한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원천지 과세제도는 국내소득에만 과세한다. 올해부터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해외 소득을 국내로 송금할 때 세무당국에 소득신고를 하거나 추가세금을 낼 필요가 없게 됐다.

미국이 원천지 과세제도로 전환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글로벌 과세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는 한국 멕시코 그리스 등 6개국만 남게 됐다. 글로벌 과세제도는 국내소득뿐만 아니라 해외소득 모두에 과세를 한다. 현지에서 세금을 납부하고 국내로 송금할 때 국내 세율에 따라 또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과세제도는 본국 송금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송금을 하지 않고 해외에 쌓아둔 돈이 무려 3조1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애플이 본국에 송금하지 않은 해외소득만도 2523억달러에 달한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미국 본토로 들여올 때 지금까지는 최대 35%의 세금을 내야했다. 애플이 해외에 천문학적인 현금을 쌓아두면서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엔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마다하지 않아온 이유다.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원천지 과세제도로 전환하면서 미국 기업들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달 17일에 애플은 송금 계획과 함께 미국 내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이에 동참할 움직임이다.

일본은 2009년에 원천지 과세제도로 전환했다. 일본 기업이 해외에 쌓아둔 현금은 2005년까지 12조엔에 달했다. 자국 내로 송금되지 않고 해외에 소득이 축적되면서 국내투자가 감소하고 혁신기술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일본이 원천지 과세제도로 전환한 이유다.

일본과 이유는 다르지만 영국도 2009년에 원천지 과세제도로 전환했다. 유럽통합 이후 유럽연합(EU) 회원국 간에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영국에서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 저세율 국가로 본사를 이전하는 기업이 늘어났다.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은 법인세율을 낮추고, 과세체계를 전환하고, 해외유보소득에 과세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세계 최대 광고회사인 WPP와 언론사 유나이티드 비즈니스 미디어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등 제도개선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원천지 과세제도는 국내투자를 역차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해외 자회사가 본사로부터 자본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면 국내투자와 해외투자의 공정경쟁을 보장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으로부터의 자본조달이 자유롭고 해외에 유보된 소득을 투자에 자유롭게 동원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는 글로벌 과세제도는 송금할 유인만 앗아갈 뿐이다. 프리츠 폴리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해외소득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해외에 재투자될 경우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높은 신생기업들이 특히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세계화와 디지털 경제가 발전하면서 기업들의 해외진출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해외소득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장애요인을 줄여 국내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이들과 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정부가 가계소득을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며 법인세율을 인상했다. 법인세율을 당장 낮출 수 없다면 과세체계를 원천지 과세제도로 바꿔 해외소득을 국내로 송금하는 데 걸림돌만이라도 제거해줘야 한다. 글로벌 기준에 역행할 때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일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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