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알을 깨는 고통 이겨야 지구를 살린다

입력 2018-02-06 17:58  

"한계상황에 처한 지구 생태계
지속가능 환경으로 되돌리려면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용기 필요"

김영훈 < 대성그룹 회장,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 >



필자가 어릴 적에는 마당 한편에 닭을 몇 마리씩 기르는 집이 많았다. 이른 봄이면 계란을 거두지 않고 어미 닭에게 알을 품게 했는데 몇 주 뒤면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따라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알이 21일간의 부화기간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로 변신하는 섭리는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움 그 자체다. 그러나 부화하는 병아리 처지에서는 꼼짝하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서 모든 영양분을 소모한 뒤 ‘이제 세상의 끝’이라고 느끼는 한계 상황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때까지 자신을 보호해 온 가장 든든한 보호막인 알 껍데기를 부수는 용기를 발휘한 끝에 마침내 새로운 세상, 더 큰 세상을 맞는 것이다.

현재 지구는 부화 직전의 병아리처럼 모든 면에서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물과 식량과 에너지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지구 생태계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있고, 재해의 강도와 피해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유엔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세계 인구전망’을 보면 현재 세계 인구는 76억 명으로 매년 8300만 명씩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등의 인구 급증세로 2030년까지 10억 명이 더 늘어난 86억 명, 2050년 98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 소비량이 증가하는 속도는 인구증가 속도보다 2배가량 더 빠르다. 인구증가와 함께 생활수준 향상으로 1인당 물 소비가 많아지는 데다, 전체 담수 소비의 70%를 차지하는 농업분야 물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 결과 물 소비량은 20년마다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농업기술 발전으로 식량생산량이 인구만큼 빨리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 차원에서 식량부족이 고착화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식량 증산은 많은 물과 에너지 투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 수자원 개발과 관리, 대규모 관개사업, 농업의 기계화, 농산물의 국제거래 확대 등은 모두 막대한 물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자원들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의미에서 흔히 ‘에너지-식량-물 넥서스(nexus·결합)’라고 부른다.

이 넥서스만큼이나 심각한 또 다른 위협은 지구를 질식시키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170만 명에 이르는 5세 이하 아동 사망의 25% 이상이 환경오염에 의한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고, 영국의 란셋 위원회는 대기·토양·물 오염으로 매년 900만 명이 사망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따른 재산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글로벌 재보험사인 ‘뮌헨 리’의 집계에 의하면 지난해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는 3300억달러에 달하며 매년 피해액이 급증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을 기점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이 확대되고 전기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등 국제기구들은 2040~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청년층이 장·노년층이 돼야 실질적인 배출량 감소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구가 그때까지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계에 달한 지구를 지속가능한 환경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혁신기술, 정부의 정책, 국가 간 협력 등 모든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지구촌 모든 구성원들 즉, 국가 기업 가정 개인이 자기 몫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용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이 같은 알을 깨는 고통을 잘 이겨내야 인류는 더 새롭고 위대한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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