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중견기업을 춤추게 하라

입력 2018-0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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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논설위원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5개월간 산·학·연 협업을 통해 50여 개 정책 과제를 담은 ‘중견기업 비전 2280’ 정책을 엊그제 발표했다. 2022년까지 중견기업을 3558개에서 5500개로 늘리고, 연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을 80개 키우겠다는 게 요지다.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 예산 2조원 투입,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을 통한 정책금융 21조5000억원 지원, 매년 지역 대표 중견기업 50개 육성 등도 포함하고 있다.

중견기업특별법에 따르면 3년간 평균 매출이 1500억원(전기전자업종 기준)을 넘지만 자산 총액이 5000억~10조원 미만인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부른다.

중견기업은 국내 전체 기업 수의 0.1%(3558개)에 불과하지만, 우리 경제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 않다. 2015년 기준으로 수출의 17.6%(929억달러), 고용의 5.5%(115만3000명)를 담당했다. 신(新)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꾸준히 창출하는 등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중견기업 비전 2280’을 내놓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의욕만 앞선 중견기업 육성책

하지만 정책은 의욕만으로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 청사진을 구체화할 세부 계획들이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없어지는 혜택과 새로 생기는 판로·세제 분야 규제가 70여 개에 달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더 이상의 성장을 회피하는 ‘피터팬 신드롬’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인데도 제도 개선이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이번에도 중소기업 적합 업종 개선 등 주요 과제들을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다.

예산도 크게 줄어 정책 추진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 중견기업정책 예산은 622억원으로 전년(765억원)보다 약 19% 감소했다. 지난해 9월 정책 주무 부처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산업부로 바뀌었지만 ‘중견기업 홀대’는 여전하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상당수 중견기업들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성장 걸림돌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업 상속을 ‘부(富)의 대물림’으로 보고 규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세율은 최대주주의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해 최고 65%에 달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14년 “가업 상속에 부여하는 혜택은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 존속과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기에 헌법적 정당성을 지닌다”고 판결한 것과 영 딴판이다.

가업 상속 막는 상속세법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중견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 제약은 특수 원료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계열사 간 거래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대기업 1차 벤더인 중견기업은 제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부도 위기에 놓인 2, 3차 납품업체를 인수하고 이들을 통해 부품을 공급받는 경우 규제에 걸린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업종과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한국에서도 독일의 미텔슈탄트 같은 강소·중견기업이 많이 나와야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혁신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중견기업 역할이 크다. 판로·세제 분야 규제와 기업 성장을 옥죄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 등이 고쳐지지 않으면 중견기업 육성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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