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20년 전 편지에 담긴 아마존의 혁신 비결

입력 2018-02-07 18:33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 집착' 경영 고수
한국, 아마존처럼 혁신할 수 있을까

양준영 국제부 차장



2017년은 아마존의 해였다. 1994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온라인 유통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유기농 식품체인 홀푸드를 인수하며 오프라인 유통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아마존의 무서운 성장에 기존 유통업체들은 하나둘 쇠락했다. ‘아마존드(amazoned: 아마존에 의해 파괴되다)’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창업자 제프 베저스는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 아마존은 이제 전자상거래 업체로만 보기 어렵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스피커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1위다.

아마존의 혁신은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계산대가 없는 무인점포 ‘아마존고’를 열어 유통의 미래를 제시했다. 벅셔해서웨이, JP모간과 손잡고 직장인 의료보험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해 보험업계를 긴장시켰다. 아마존의 ‘파괴적 혁신’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아마존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베저스가 매년 주주총회 시즌에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베저스는 ‘주주 편지’에 1997년 상장 당시 보냈던 첫 편지를 동봉한다. 20년째 보낸 이 편지에 담긴 핵심 경영 키워드로는 고객에 대한 집착, 장기적 관점, 빠른 의사결정 등이 꼽힌다.

베저스는 직원들에게 ‘경쟁’보다 ‘고객’에게 집착하라고 강조했다. 고객이 좋아할 만한 일을 계속 만들 것을 주문했다. 기존 유통구조를 파괴해 편리하고 저렴한 쇼핑 서비스를 내놓았다. 연회비 99달러를 내고 무료 배송과 비디오, 음악 등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프라임 회원은 미국에서만 9000만 명으로 늘었다.

베저스는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했다. 단기 이익보다는 오래 지속될 사업을 위해 고객과 인프라를 확장하고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다. 아마존이 20여 년간 거의 이익을 내지 못한 것도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현재 주력 사업인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AI 스피커 등도 회의론 속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시장을 석권했다. 베저스는 빠른 의사결정도 중요시했다. 정보가 70%만 모이면 바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90% 이상 정보가 모이길 기다리면 결정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눈부신 성장에 비하면 이런 경영 방침은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년 넘게 초심을 잃지 않고 뚝심있게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저스가 주주들에게 1997년 첫 편지를 동봉해 보내는 것도 ‘첫날’의 마음으로 회사를 경영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다.

한국에도 ‘제2의 아마존’ ‘제2의 베저스’를 꿈꾸는 기업과 기업인이 많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기업 환경에서는 아마존과 같은 기업 출현을 기대하기 힘들다. 시장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아마존의 혁신을 감당할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준에서 아마존은 문어발 대기업이다. 점유율도 지나치게 높다. 골목상권 보호는 안중에 없고 고객이 원하면 ‘세상 모든 것’을 가져다 팔 태세다. 아마존고와 같은 무인점포는 일자리의 적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안정을 정책과제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전면 도입하기는 힘들다. 국내에서도 베저스보다 혁신적이고, 고객에게 집착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기업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규제 걱정 없이 마음껏 사업을 펼칠 무대가 없다면 제2의 아마존은 기대하기 힘들다.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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