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군절 생중계 안해 '이례적'
오전 1시간30분간 진행
김정은 "우리 존엄 자주권
0.001㎜도 침해 못해"
남북대화 지속 노리며 평화공세
북한 "미국과는 만날 의향 없다"
[ 이미아 기자 ]
북한이 8일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 규모가 대폭 축소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생중계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례적인 움직임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전날이란 점 및 우리 정부와 미국의 잇따른 압박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물꼬를 튼 남북대화를 지속시키는 등 평화공세의 연장선이라는 시각도 많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정규군 창설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오후 5시30분(평양시 오후 5시)부터 1시간40여분간 녹화 방송했다. 방송 관련 사전 예고는 전혀 없었다. 녹화 영상도 중간 중간 끊어지는 등 급히 편집한 흔적이 보였다. 방송 마지막 부분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과 화성-15형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초 우려했던 신형 ICBM의공개는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북한이 오늘 오전 11시30분부터 약 1시간30분간 열병식을 한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4월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열병식 때보다 참가 병력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날 열병식은 병력 1만3000여 명을 포함해 총 5만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생중계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한 메시지”라며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나름대로 고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그동안 열병식 당일 예고방송을 하고,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생중계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2012년 4월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부터 최근 다섯 차례 열병식을 모두 생중계했다. 특히 지난해 4월15일 태양절 열병식엔 40여 개 언론사 130여 명의 기자를 초청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 시간 가까이 생중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날 검은색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연단에 서서 육성 연설을 했다. 그는 “침략자들이 신성한 우리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0.001㎜라도 침해하거나 희롱하려 들지 못하게 하겠다”며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조선반도(한반도) 주변에서 부산을 피우고 있는 현 정세하에서 인민군대는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고 싸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오늘의 열병식은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발전된 강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상을 과시하게 될 것”이라며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남아 있고 미국의 대조선(북한)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조국과 인민을 보위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강력한 보검으로서의 인민군대 사명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바로 옆엔 최근 해임된 황병서의 후임으로 군 총정치국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김정각, 이명수 총참모장이 서 있었다.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평창올림픽 북한 고위급 대표단 단원으로 9일 남한을 방문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김정은 뒤편 주석단에 있는 모습도 화면에 포착됐다.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 등과 함께 주석단에 등장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 혁명무력으로 강화 발전시킨 1948년 2월8일을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는 건군절이 평창올림픽 개막 하루 전이라 열병식 개최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를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며 “평창올림픽과 관련해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우리 측 제재를 풀기 위해 나서려 할 것”이라 말했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이번엔 열병식을 내부적 차원에서 끝내려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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