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가치 있으면 가격 저항도 없어
전화기라는 인식에서 컴퓨터 대체하는 상위 제품으로
스마트폰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 100만원이 깨졌다. 애초에 고가를 책정한 건 제조사였지만, 결국 가격표를 뗀 건 소비자였다. 높은 가격을 소비자가 수긍했단 얘기다.
제품 가격은 판매자와 구매자, 쌍방 시점에서 본 합리적 책정이 필수다. 제품을 판매하는 측의 요인을 '내부요인', 구매하는 측의 요인을 외부요인이라 부른다. 두 요인을 파악한 후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원가'를 토대로 가격을 책정하는 '내부적 요인' 외에 제품 이미지, 구매자 심리 등을 감안한 '외부적 요인'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날로 높아지는 스마트폰의 가치를 소비자가 인식하면서 가격 책정의 주도권이 소비자로 넘어가는 단계란 의미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출시한 스마트폰 신제품들을 통해 증명됐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과 애플 '아이폰X(텐)'은 고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트8의 출고 가격은 64GB 모델 109만4500원, 256GB 모델 125만4000원으로 역대 노트 시리즈 중 가장 비쌌다. 노트2와 노트3가 각각 108만9000원, 106만7000원이었지만 이외 제품은 모두 100만원을 밑돌았다.
아이폰X은 고가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아이폰X 국내 가격은 64GB 모델이 142만원, 256GB 모델이 163만원으로 책정됐다. 지금까지 다산네트웍스가 내놓은 람보르기니폰(270만원)과 같은 한정판을 제외하면 역대 스마트폰 최고가다.
LG전자 V30도 100만원에 육박했다. 64GB 모델이 94만9300원, 128GB 용량인 V30플러스가 99만8800원으로 책정됐다. V20보다 10만원 이상 비쌌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이 과연 '100만원'이상의 가치를 지닌 제품인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그것도 잠시.
노트8은 나오자마자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노트8은 85만대의 역대 최고 사전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출시 48일만에 국내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폰X도 출시 초반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출시 5일만에 12만대가 판매됐고 일주일 만에 초도물량 15만대가 개통됐다. 노트8보다 램(RAM) 등 일부 부품 사양이 낮음에도 30만원 이상 비싼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결과다.
이후 '노치 디자인'에 대한 반감과 '배터리 게이트' 등의 영향으로 판매량이 줄긴 했지만 아이폰X은 지난해 4분기 애플이 분기 최대실적을 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100만원을 훌쩍 넘는 스마트폰들이 대중성을 인정받자 고가 논란은 없던일이 됐다.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구매가치가 있다면 가격 저항도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그간 스마트폰의 가치는 '전화 기능을 하는 통신기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 비싸지 않다고 여겨진 전화기를 베이스로 한 제품이다 보니 가치 평가에서 손해를 보는 점도 분명 있었다. '스마트폰이 어떻게 PC보다 비쌀 수 있냐'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이런 인식들은 변화를 맞고 있다.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납득할만큼 스마트폰의 기능이 다양해지면서부터다.
스마트폰은 스마트홈 등 다양한 스마트 서비스의 '허브' 역할까지 하게 되면서 활용도와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PC를 넘어 각종 가전 제품보다 고평가 받을 날이 멀어보이지 않은 이유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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