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알랭 베르세 대통령 "시장 중심·유연한 노동 정책이 구글·디즈니를 스위스로 끌어들였죠"

입력 2018-02-11 18:50  

평창올림픽 참관차 방한한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

시장 개방은 경제성장 핵심
한국·EFTA 무역협정 격(格) 높이면 양국 무역관계 발전 가능성 커

국제기구 세금표준 모두 채택…스위스, 더는 조세회피처 아냐
블록체인 기술 문제점 인식…가상화폐공개 규제 검토

직접민주주의가 디지털시대
브레이크로 작동하지만 실제론 국가안정 지탱하는 힘



[ 허란 기자 ]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46)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차 지난 7일 닷새간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강행군했다.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는가 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방문했다. 10일엔 스위스 대표팀과 남북한 단일팀의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전했다. ‘영스타(young star)’ 지도자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열정적인 외교활동을 벌였다. 지난 8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서는 “한국과 스위스가 과학 분야의 합자 연구혁신(R&I) 협력을 하면 상호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스위스 제약기업 로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천 송도 본사를 방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의 방한에 맞춰 스위스 연방교육연구혁신청(SERI)은 한국 보건복지부와 ‘한국-스위스 생명과학 이니셔티브위원회’를 공식 발족시켰다. 베르세 대통령은 스위스가 ‘로봇산업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한 배경으로 “시장중심 정책과 유연한 노동시장”을 꼽았다.


▷첫 한국 방문인데요.

“머릿속으로 그렸던 한국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한국은 혁신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국가입니다. 하루 만에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관광 한국’으로 더욱 입지가 다져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무엇을 논의했습니까.

“스위스와 한국의 경제·과학 분야 협력 강화를 논의했습니다.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스위스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위원으로) 남북 간 대화를 위해 같이 일하고 있고, 대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합니다. 두 개의 코리아가 한 팀을 이뤄 경기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스위스 대표팀이 그런 남북 단일팀과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를 치르게 돼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은 스위스가 속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2006년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했습니다.

“한·EFTA 간 FTA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양국 무역관계가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유럽연합(EU)을 포함해 여러 국가와 FTA 체결을 성사시켰습니다.”

▷스위스가 관심을 두는 다른 협력 분야는 무엇입니까.

“R&I 분야도 한국과 스위스가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두 나라는 혁신 분야 ‘세계 챔피언’입니다. 양국이 과학 분야 합자 R&I 사업을 추진한다면 상호이익을 증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위스는 3차원 영상산업과 로봇산업의 ‘실리콘밸리’로 불립니다. 구글, 디즈니 같은 대기업부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까지 왜 스위스에 몰려듭니까.

“시장중심 정책과 유연하고 건전한 노동시장을 주된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개방경제라는 점도 핵심 요인입니다. 스위스는 30개가 넘는 FTA를 맺었습니다. 양질의 고등교육 덕분에 혁신역량이 향상됐습니다. 탄탄한 금융시장, 철도·도로·인터넷 등 인프라, 삶의 질도 기업들을 유인하는 이유로 꼽힙니다.”

▷문재인 정부도 혁신성장과 스마트시티를 국정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속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전자정부 개발, 기업금융 촉진, 시장 접근성 향상, 교육 및 R&I 향상 등이 대상입니다. 기업혁신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기술혁신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각종 자문, 협력 네트워크도 제공합니다.”

▷국제무역질서에서 보호주의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시장개방을 유지해야 합니다. 개방성은 스위스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입니다. 다만 개방성을 유지하면서도 자국민에게 좋은 사회적 환경과 근로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균형점을 찾아야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위스와 한국은 경제적으로 강하고 경쟁력이 있습니다. 열린 시장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스위스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쳤습니다.

“2015년 1월 유로화에 대한 최저환율목표치 폐지 이후 (스위스프랑화 가치 상승으로 인해) 성장이 둔화했지만 다시 회복하고 있습니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서비스 분야 성장이 저조했으나 경제 전반이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에 힘입어 향후 몇 분기 동안 활발한 회복세가 예상됩니다.”

▷스위스 3대 수출 분야(제약·기계·시계)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3개 분야 모두 앞으로 몇 년간 평균 이상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 호황으로 스위스 제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스위스프랑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졌습니다.”

▷스위스다움으로 해석되는 ‘스위스니스(Swissness)’라는 말이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이 됐는데요.

“스위스니스는 고품질, 독창성, 자신감과 연관돼 있습니다. 이는 혁신과 완벽을 추구하는 기업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스위스 브랜드의 가치를 보존하고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스위스니스 관련법이 지난해 1월 발효됐습니다. ‘메이드 인 스위스’ 표기와 스위스 국기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가상화폐의 불법적인 활용 가능성을 ‘디지털판 스위스 은행계좌’에 비유했습니다.

“스위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 다른 국제기구의 세금 관련 표준도 모두 채택하고 있습니다. 스위스가 더 이상 조세피난처로 여겨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스위스도 블록체인 기술 관련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및 가상화폐공개(ICO) 실무작업반을 설치해 법적 체계를 검토하고 규제 필요성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스위스가 금융 중심지라는 전통을 보전하기 위한 차원입니다.”

▷‘최연소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정치인을 꿈꿨던 적은 없습니다. 어렸을 적엔 철도 기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음악과 스포츠클럽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영역으로 오게 됐습니다. 젊은 정치인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선한 접근법을 갖습니다. 상원에서 동료 의원들과 같이 일하면서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급변하는 디지털혁명 시대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게 합니다. 대단한 특권이지만 쉬운 길은 아닙니다. 세계화와 디지털혁명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과정에서 스위스의 의사결정 구조와 양원제 시스템이 ‘브레이크’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경제의 안정성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1848년 구성된 연방정부제는 한 번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안정성이 기업을 유치하고 경제 번영을 가져온 힘입니다.”

▷스위스는 1971년이 돼서야 여성의 연방 투표권을 허용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스위스는 여러 방면에서 성 평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30년까지 상장기업은 이사회의 30%, 경영진의 20%를 여성으로 임명해야 하는 법이 대표적입니다.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50인 이상 기업 대상으로 자가분석수단을 출범시켜 급여 관행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공공분야에는 평등임금 헌장을 도입했습니다.”

● 알랭 베르세는 72년생 스위스 최연소 대통령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은 ‘최연소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2011년 39세에 연방각의 각료에 선출되자 현지 언론은 “젊은 정치 스타가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84년 만에 처음으로 최연소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스위스는 연방각의를 구성하는 7개 부처 장관이 국가원수의 직무를 공동 수행한다. 매년 12월 연방의회에서 이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새로 선출한다.

내무장관을 겸하고 있는 베르세 대통령은 젊은 정치인답게 ‘신선한 접근방식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합의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취임 일성으로 “슬로건에 따르는 정치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임기 내 업적을 남기기 위해 특정 이슈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재즈피아노 애호가로 남미 전역에서 피아노 연주투어를 한 적도 있다.

△1972년 스위스 프리부르주 출생 △1996년 스위스 뇌샤텔대 정치학 석사 △1996~2000년 뇌샤텔대 지역경제연구소 연구원 △2000년 프리부르주 제헌의회 회원 △2003년 프리부르주 상원의원 △2005년 뇌샤텔대 경제학 박사 △2012년 스위스 연방각의 내무장관 △2018년 스위스 대통령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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