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들이 뛸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최희남 < IMF 상임이사 >
혁신적인 신기술이 기존 금융서비스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핀테크(금융기술)의 등장이다. 인공지능 기술, 빅데이터, 생체기술, 분산장부 기술(블록체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술들은 엄청난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의사결정을 도와주고 거래 투명성을 높인다. 핀테크 업체에 대한 총 투자액은 250억달러에 달하고, 시가총액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배 이상 증가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 개인이나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면서 신용 수준에 맞는 적정한 금리 적용이 가능해졌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필요한 금융거래를 개인 간에 직접 할 수도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간 금융서비스를 받지 못한 취약계층도 모바일뱅킹을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금융의 본질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중개업무다. 자금 여유가 있는 자산가와 자금이 필요한 사업가를 연결하거나, 국경 간 지급 결제를 가능하게 하고, 금융시장에서 가격 결정을 도와주는 중개업 같은 것이다. 신기술은 네트워크화를 통해 개인 디지털 신분 확인과 계좌에 관한 진위 파악을 쉽게 함으로써 신뢰를 확보하고 거래비용을 낮춰 기존 금융업을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에 대한 신용과 거래 행태에 관한 정보가 많을수록 소비자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업체, 아마존 같은 온라인 판매업체, 구글 같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축적된 거래내역과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금융업으로 영역을 확대할 것이다. 인터넷 상거래를 주도하는 알리바바는 적극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고 있다.
핀테크의 잠재적인 위험은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나 머신러닝에 기반했을 때 금융거래가 한 방향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해킹으로 금융정보나 금융자산을 빼돌리는 사이버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거래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자금 세탁과 불법 거래 지원에 악용될 수도 있다.
금융업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는 핀테크는 감독당국에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중앙집권적인 금융시장을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시장 참가자들이 대체할 것이다. 일부 핀테크 업체는 은행업 인가 없이 사실상 은행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은행, 보험, 증권과 같은 금융업종별 감독으로는 감독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감독과 규제가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감독과 금융 현실의 차이가 커질 것이다. 디지털 금융은 특성상 국경 간 장벽 없이 실시간으로 거래가 이뤄져 국가별 감독체계 차이를 이용한 규제 회피가 가능하다. 가상화폐의 국내 거래를 금지해도 해외 거래소를 통해 거래할 수 있다. 국제 공조가 필요한 이유다. 주요 20개국(G20)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같은 국제협의체에서 합리적인 규제와 지원체계를 논의해야 한다.
핀테크가 주는 새로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로 인한 금융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홍콩 호주 싱가포르 영국에서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 접근방식이 좋은 사례다. 특정 업종이나 행위에 대해 일정기간 규제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부작용이나 파급 효과를 감안해 이에 맞는 감독체계를 정비한다. 그러면 핀테크 업체는 초기에 규제 이행을 위한 비용 부담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 핀테크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에 관한 최근의 논란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다. 이런 관심을 금융 분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핀테크를 자유롭게 해서 용감한 선구자들이 앞으로 뛰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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